대한민국 암 대해부 - 3부 암에 올인하는 병원들 <하> 메디컬 코리아, 암 진료 허브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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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립샘암 치료를 위해 한국을 찾은 미국인 더글러스 애덜리(62)가 28일 국립암센터 양성자 치료기 앞에서 의료진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프로톤코리아 제공]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싱가포르 사무소와 일본 사무소에 근무하는 이탈리아인 카파넬리 지오반니(48)는 1년 전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에서 갑상샘암 수술을 받았다. 인터넷을 뒤지고 한국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첨단 로봇 수술 덕분에 흉터가 생기지 않았고, 회복 기간이 빨라 금방 건강을 되찾은 것이다.

 미국인 더글러스 애덜리(62·샌프란시스코 거주)는 국립암센터에서 두 달간 첨단 암 치료기계인 양성자 치료기로 전립샘암 치료를 받고 28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은 전립샘 치료 기술이 세계 최고다. 하지만 그는 한국 병원을 택했다. 이유는 양성자 치료 기술이 우수한데 치료비가 싸고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한국이 암 치료의 허브로 도약하고 있다. 미국·일본·중국·러시아·몽골·카자흐스탄·브라질 등 세계 각지의 암환자들이 한국을 찾는다. 치료 기술을 배우러 오는 외국 의사도 증가하고, 한국 의사가 항암제 국제 임상시험을 주도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됐다.

 한국의 위상 변화는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IARC) 자료(글로보캔 2008)에서 나타난다. 국립암센터가 IARC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2008년 위암 발병률이 세계 182개국 중 1위였다. 하지만 생존한 사람이 가장 많아 발병 대비 사망률은 가장 낮았다. 국립암센터 국가암관리사업단 박은철 단장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치료 성적이 좋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대장·간암도 발병률 대비 사망률이 세계 1위로 가장 성적이 좋았다. 발병률 1위인 갑상샘암은 10위였다. 반면 쓸개담도암은 발병 대비 사망률이 세계 70위로 성적이 나빴다.

 치료 성적이 좋은 대표적인 이유는 수술 기술 향상과 경험 축적 덕분이다. 지난해 국내 병원 중 가장 많은 1784건의 위암 수술을 한 서울아산병원은 2004년(1322건)보다 5년 사이에 수술이 35% 늘었다. 대장암은 지난해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이 1428건으로 같았는데 5년 전보다 아산병원은 45%, 삼성병원은 117% 증가했다. 지난해 삼성서울병원에 이어 두 번째로 갑상샘암 수술을 많이 한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은 5년 사이에 215% 증가했다. 간암 최다 수술 병원인 서울아산병원은 같은 기간 262% 늘었다.

 한국 병원을 찾는 암 환자는 외국에서 치료를 포기한 사람도 있다. 일본 갑상샘암 환자(59)는 암 덩어리가 너무 커 본국에서 수술 불가 판정을 받았으나 1월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고 귀국했다. 러시아 건축업자(63)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위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치료를 포기했다가 4월 한국을 찾아 이달까지 계속 치료를 받고 있다.

 외국인 의사들의 ‘한국 배우기’도 이어지고 있다. 벨기에 생피에르대학병원의 지오바니 다프리(35·외과) 교수는 서울대병원의 양한광(외과) 교수에게서 1주일간 연수를 받고 23일 돌아갔다. 필리핀 제퍼슨(31·핵의학과 전공의)은 6월부터 서울대병원 정준기(핵의학) 교수 밑에서 암 관련 영상 판독법을 배우고 있다. 그는 “필리핀에서 열흘 걸리는 진료가 한국에서는 하루 만에 끝난다”며 “첨단기술을 배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국내 의사들이 다국적 임상시험을 주도하는 것도 한국 의료 수준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서울아산병원 강윤구(종양내과) 교수는 세계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진행성 위암 치료제 임상시험을 총괄하고 있다. 가톨릭대 김동욱 교수, 서울대 방영주 교수, 삼성서울병원 박근칠 교수, 연세대 라선영 교수도 국제 임상시험을 주도하고 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팀장, 박태균·황운하·이주연·배지영 기자, 홍혜현 객원기자(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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