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한 연말? 우린 공연 보는 송년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대구백화점 직원들이 23일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송년 공연 관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가슴이 두근거려요. 정말 재미있다고 들었거든요.….”

 23일 오후 7시 대구시 북구 칠성동 오페라하우스 로비. 대구백화점 직원인 하현자(43·여)씨가 공연 티켓을 손에 쥔 채 시계를 쳐다본다. 하씨는 “직장 동료와 함께 왔다. 유명한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좋다”며 활짝 웃었다. 오페라하우스 출입문 안쪽에는 ‘대백가족 티켓안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대구백화점 직원들의 송년회 모습이다. 이들은 객석에 나란히 앉아 뮤지컬 ‘맘마미아’를 관람했다. 오후 7시30분에 시작된 공연은 오후 10시10분에 끝났다.

 대구백화점의 ‘공연 관람 송년회’는 14일 시작됐다. 30일까지(일주일에 세 차례) 200여 명씩 모두 2000명이 관람할 예정이다. 이 중에는 고객 600여 명도 포함돼 있다. 좌석은 R석으로 한 사람당 10만원이지만 단체로 구매하면서 30% 할인혜택을 받았다. 전체 관람료는 1억4000만원에 이른다.

 공연 관람 송년회는 총무팀의 제의로 이루어졌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다 구제역이 확산하는 등 가라앉은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서다. 이 회사는 매년 대형공연장을 빌려 직원들의 장기자랑 등을 선보이는 ‘한마음 축제’를 열었다. 김영환(41) 인사과장은 “차분하면서도 의미 있는 송년모임을 계획하다 공연을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보고를 받은 구정모 회장은 선뜻 승낙했다. 최영대(49) 이사는 “대구가 공연도시를 표방한 만큼 좋은 작품을 보며 한 해를 정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권정화(32·여)씨는 “비싼 관람료 탓에 혼자 보기가 쉽지 않은 공연인데 회사가 입장권을 끊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담배 연기 자욱한 송년 모임이 아니어서 더욱 좋았다”고 덧붙였다.

 공연 관람 송년회를 연 곳은 또 있다. 대구 서구의 건설업체인 ㈜한신산업 임직원 40여 명은 최근 송죽시어터에서 연극 ‘뉴보잉보잉’을 관람했다. 이 회사 김건호 대표가 송년모임으로 공연 관람을 제의했다. 직원 노승현(27)씨는 “연극을 보고나니 정말 재미있고 유익한 송년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 자주 공연장을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구시설관리공단 총무인사팀 직원 6명도 봉산문화회관에서 연극 ‘라이어 3탄’을 보는 것으로 송년모임을 대신했다.

 두 회사는 대구문화재단의 ‘우리 회사 공연 보러 가는 날’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이는 기업체에서 단체로 공연 관람을 원할 경우 볼만한 작품을 소개하고 입장권 가격도 할인해 주는 문화활동 지원 프로그램이다.

 대구시 김대권 문화예술과장 “술을 마시는 송년회보다 문화행사를 관람하는 것이 사내 단합에도 더 도움이 된다”며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면 대구가 명실상부한 공연도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시는 2003년부터 대구국제오페라축제를, 2007년부터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을 여는 등 공연산업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연장 확충도 이어져 1000석 이상이 9개, 200석 이하 소극장은 20개에 이른다. 소극장들은 매년 소극장 축제를 열고 있다.

글=홍권삼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