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스 센스〉와〈 큐브〉, 20대 감독들의 놀라운 감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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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8살 땐가 아버지가 사준 카메라를 가지고 놀면서 단편영화들을 찍기 시작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보통의 아이들이 연필을 가지고 글쓰기연습을 할 때 스필버그는 이미 카메라로 이야기를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첫 장편영화 〈듀엘〉을 발표한 것은 만 24살 때인 1971년이다.

갑자기 스필버그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올 추석시즌 최고 흥행작인 〈식스 센스〉와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으로 23일 개봉하는 〈큐브〉가 모두 20대 감독들의 신선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전혀 낯선 신예감독들이지만 이들은 모두 어렸을 때부터 카메라를 손에 쥐고 이야기를 구성해낸 영상세대로 매우 안정된 솜씨를 과시한다. 마치 글재주가 있는 어린아이가 능숙하게 소설을 써내듯 영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데 익숙한게 느껴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주목하는 것은 별다른 특수효과없이 이야기의 구성능력만으로 감동과 충격, 그리고 신선한 놀라움을 우리에게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식스 센스〉는 탁월한 이야기구성 능력, 〈큐브〉는 인물과 상황에 집중함으로써 저예산영화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솜씨로 감탄을 자아낸다.

〈식스 센스〉가 두 번 째 장편영화인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인도출신의 미국감독으로 1970년생이다. 그는 열살 때부터 고향 필라델피아에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열여섯살 때 이미 45번째의 단편영화를 완성했고, 열일곱살 때엔 의사부부인 양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의학공부를 포기하고 뉴욕대학에서 영화학을 전공했다.

마지막 반전의 놀라움을 거론하는 일이 새삼스러울 만큼 인구에 회자된 〈식스 센스〉는 현실적인 것과 영적인 것, 공포와 드라마(특히 가족드라마), 세기말의 증상인 듯 요즘 부쩍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초능력이야기들을 균형있게 결합한 이야기의 힘이 압권이다. 중반부의 약간 지리함이 마지막 반전의 감동과 충격으로 완전히 씻겨져나가는 〈식스 센스〉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은 "다시 한번 보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영화는 나를 속이지 않았지만 난 감쪽하게 속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다시 보면서 감독이 이야기를 구성하고 연출해낸 영리한 장치들을 점검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다.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한 샤말란은 아주 꼼꼼하고 세밀한 계획으로 관객들을 속이는 영리함을 발휘했다.

다만 〈식스 센스〉를 보면서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우리 문화의 핵심랄 수 있는 한풀이정서를 할리우드에서 먼저 이를 바탕으로 한 흥미로운 드라마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감독이 인도태생이어서 동양적인 정서에 대한 이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말이다.

〈큐브〉의 시나리오를 쓰고 직접 연출한 캐나다 감독 빈센조 나탈리는 1969년생으로 올해 만 30세. 하지만 〈큐브〉는 스물 여덟살 때인 97년에 만든 작품이다. 만화가 지망생이었던 그는 〈스타워즈〉를 보고 영화로 진로를 바꾸었으며, 열한 살 때 슈퍼 8㎜ 카메라로 첫 영화인 우주 SF 〈다크 포스〉를 만들었다. 소박한 영화였지만 어린 나이답지 않은 야심작 작품이었다고 한다. 이후 계속 습작영화를 만들면서 나탈리는 독특하고 기발한 발상의 영화를 만드는데 발군의 솜씨를 발휘했다. 그는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스토리보드작가로 일하면서 대본에 맞춰 이야기를 구체화시키는 능력과 시각적인 감각을 키울수 있었다.

거대한 정육면각체의 미로 속에 갇힌 채 필사적으로 탈출구를 찾으려는 6명의 남녀이야기를 펼쳐가는 〈큐브〉는 사실 매우 단순한 상황설정이어서 초반에는 과연 어떻게 이야기를 계속 끌어갈 것인가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그는 어려운 수학적인 지식과 퍼즐, 그리고 각각 어느 한 가지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는 등장인물들에게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면서 관객들의 긴장감과 흥미를 붙잡아둔다.

감각적인 촬영술도 돋보이는 점. 〈큐브〉는 정육면체의 방 단 한 세트를 만들어 전촬영이 진행됐다. 다양한 조명만을 이용해 빨강 방, 파랑 방, 초록 방 등을 만들어내 분위기를 다양하게 이끌어낸 것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4억원 정도인 저예산영화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장점을 살린 셈이다. 기괴하면서도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반짝이고, 치밀한 연출력은 보는 관객들에게도 밀실에 갇힌 듯 폐쇄공포증을 불러일으킨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뒤를 잇는 차세대 캐나다 감독으로 각광받는 나탈리는 계속 SF영화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추신: 우리 때는 그림일기를 썼지만 이제는 아이들에게 비디오일기를 쓰도록 해야할 모양이다. 이제는 원로 감독 대열에 들어선 우디 앨런은 어렸을 때 책은 별로 보지 않고 하루 종일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고 한다. 나이든 세대의 감독들이 '보는 것'으로 영상의 감각을 익혔다면 이제 젊은 세대 감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직접 카메라를 조작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감각을 익힌 것이다. 스필버그도 그렇지만 젊은 감독들의 참신한 영화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예술은 일찌감치 재능을 발휘하는 천재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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