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반도 날씨 심술 … 다섯 ‘악동’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한파가 계속된 26일 서울 한강시민공원 잠실지구 선착장의 유람선 난간에 고드름이 달려 있다. [김태성 기자]

30년 만의 12월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 서울과 강원·경기 등에서는 26일 수도 계량기가 얼어터지는 사고가 잇따랐다. 서울에선 이날 500건가량의 계량기 동파가 신고됐고 강원도 춘천에선 수도관로 두 곳이 터졌다. 또 강원도와 경기 북부, 인천 강화 등지에서는 강추위로 소독약이 얼어붙어 구제역 방역에 애를 먹었다. 한파와 폭설로 고통받는 건 한반도만이 아니다. 프랑스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에서는 성탄 전야인 24일 쏟아진 눈 폭탄 탓에 700편 가까운 항공기 운항이 취소됐다. 많은 눈이 내리고 있는 뉴욕·보스턴 등 미국 북동부 지역은 27일까지 강설량이 최고 50㎝를 기록할 전망이다.

지구촌이 이처럼 기상 이변으로 몸살을 앓는 것은 최근의 일만이 아니다. 극심한 기상 이변은 올해 내내 계속됐다.

 지구촌 날씨에 영향을 주는 ‘다섯 악동’이 번갈아 심술을 부린 탓이다. ▶북극 진동 ▶엘니뇨 ▶제트 기류 ▶북태평양 고기압 ▶라니냐가 장본인이다. 본래 기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지만 올해는 특히 지구온난화 현상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더욱 숨가쁘게 기상 이변을 낳았다.

 올 초 한반도는 물론 유럽·중국·미국 등 북반구 곳곳은 한파와 폭설에 시달렸다. 북극 지방의 찬 공기가 내려오는 것을 막아주던 소용돌이(한랭와)가 약해지면서 한기가 무더기로 쏟아져 내려온 것이다. 이 한랭와를 약화시킨 게 북극 진동이다. 통상 북극 진동으로 인해 북극과 북반구 중위도 지방 사이의 기압 차이가 커졌다 줄었다를 반복하는데 올해는 기압 차가 줄면서 와류가 약해졌다는 설명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월 4일 서울에는 1937년 공식 관측 이래 최대인 25.4㎝의 ‘눈 폭탄’이 쏟아졌다. 북극 진동과 변형 엘니뇨(엘니뇨 모도키)가 함께 작용한 탓이다. 태평양 수온이 올라가 많은 수증기가 생겼고 그 수증기가 동아시아 쪽으로 몰려왔다가 한랭와를 뚫고 나온 찬 공기와 만나 큰 눈이 됐다는 것이다.

 여름에는 북반구 중위도 지방의 상공을 빠르게 지나는 제트기류가 이례적으로 남북으로 크게 요동치면서 흘렀다. 이 때문에 더운 공기가 북쪽으로, 찬 공기가 남쪽으로 옮겨져 러시아에서는 최악의 폭염이, 파키스탄과 중국에서는 집중호우가 발생했다.

 한반도의 여름 날씨를 결정하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도 올해 유독 세력이 컸다. 한반도와 일본에서 폭염과 열대야가 장기화된 이유다. 또 이 고기압이 초가을까지 버티는 바람에 추석 연휴 첫날인 9월 21일 서울에 강수량 259.5㎜의 기록적인 집중호우가 내렸다.

 동태평양 바닷물 온도를 끌어올렸던 엘니뇨는 6월 이후 라니냐로 빠르게 바뀌었다. 동태평양 수온은 평년보다 낮아졌지만 반대로 서태평양 바닷물은 예년보다 더 높아졌다. 이로 인해 필리핀과 대만 인근에서 태풍 세 개가 한꺼번에 생겨났다. 9월 1일 강화도에 상륙해 피해를 끼친 제7호 태풍 곤파스가 대표적이다. 기상 이변이 빈발하자 기상청과 녹색성장위원회는 26일 이례적으로 ‘2010 이상기후 특별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기상 이변이 경제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농업 분야에서는 과일나무와 보리·양파 등 월동 작물이 1~4월 이상저온으로 피해를 보았다. 일조량 부족과 잦은 비로 시설작물과 배추 작황도 안 좋았다.

 폭설로 인해 육상 운송 의존도가 높은 홈쇼핑·온라인쇼핑·가전 등 각종 산업도 적지 않은 피해를 보았다. 국토해양부는 폭설로 도로와 운전 여건이 나빠진 탓에 2조4000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오늘 수도권 최고 5cm 눈=27일 밤부터 서울 등 수도권 지역에 눈이 오기 시작해 28일까지 최고 5㎝의 눈이 내릴 전망이다. 또 충청·전북 지역은 27일 새벽부터 기온이 내려가면서 쌓인 눈이 얼어붙어 빙판길이 예상된다. 기상청은 “충청·전북 지역에는 2~7㎝, 많은 곳은 10㎝ 이상의 눈이 쌓여 빙판길 교통사고가 우려된다”며 “27일 밤 늦게 서울과 경기 남부, 경기북부 서해안 등에도 눈이 내리겠다”고 26일 예보했다. 28일에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눈이 내리다 낮에 점차 그친다. 기상청 관계자는 “27일 아침까지 추위가 이어지겠지만 낮부터는 기온이 올라 추위가 풀리겠다”고 말했다.

글=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