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부는 미술 새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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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바다 건너 제주에 가니 절집이 전시장으로 쓰이고, 폐교(廢校)가 화가 작업실이 된다. 올레길만 뭍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게 아니었다. 부처 뵈러 대웅전을 찾았다가 그림에 빠지고, 추억 찾아 모교에 들렀다가 작업장 구경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 미술의 이름으로 제주를 매력덩어리로 만들고 있는 작가 강명희, 백광익씨의 인생 제2막 이야기를 들어본다.

제주=글·사진 정재숙 선임기자

불같이 살아나다, 불화

법화사 구화루, 약천사 대적광전서 개인전‘유목민’강명희씨

제주 서귀포시 법화사 구화루에서 만난 화가 강명희씨는 “내 그림들이건만 여기서는 내가 손님이 되어 다시 뜯어보게 된다”고 했다. 벽에 걸리거나 기둥에 얹히거나 나무 탁자에 눕혀진 유화와 수채화들이 열린 창호지문으로 스며드는 빛 속에 만다라처럼 빛난다.

“천 년을 기다려 어렵게 만났으니 내년에도 이어가셔야지요.”

 19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법화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는 도현 스님이 화가 강명희(63)씨의 잔에 차를 따르며 입을 열었다. 통일신라 장보고 청해진 대사에 의해 창설돼 1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 법화사가 처음 맞이한 현대미술전시회의 인연을 강조한 덕담이었다.

 올 3월부터 법화사 구화루에서 열려온 강씨의 개인전은 입소문을 타고 서울 화랑가 주인을 줄줄이 불러들이는가 하면, 기 충만한 춤꾼 홍신자씨나 눈 밝은 미술평론가 성완경씨 등의 지지를 받아 몇 달째 연장 중이었다. 거기에 2011년 일정까지 약속 받았으니 강씨로서는 의욕이 솟을만한 일이었다.

 조촐하면서도 의젓하고 검박하면서도 낙낙한 법당 구화루는 마치 천 년 전부터 그곳에 강명희씨 작품을 품고 있었던 듯 관람객을 시치미 떼고 맞는다. 프랑스 르와르 강 근처 도시 투렌의 농가 작업장, 제주 안덕면 화실, 인천 스튜디오를 유목민처럼 오가며 그 곳과 때와 자신을 일치시키며 그림을 그려온 강씨는 “이처럼 다양한 작품을 맞춤하게 안아주는 구화루가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

 “광주시 전남도청을 그린 반추상 그림이 구화루 구석에 살짝 누워 있는데 여러 사람이 유독 그 그림을 짚어내고 알아봐요. 사람이 많이 죽은 장소의 그림이 다른 거죠.”

 그는 그림을 그리다 너무 뜨거워지면 밖으로 나가 흙을 파고 풀을 뽑는다고 했다. ‘정직하게 비워내기’ 위해서다. 그런 과정 속에서 태어난 가로 4m, 세로 5m의 대작 ‘북쪽 정원’은 안덕면에 있는 또 하나의 절 약천사 대적광전에 부처상과 나란히 내걸렸다. 탱화나 불화의 전통을 이은 듯 보이는 작품 앞에서 강씨는 “이 화면은 지난 10여 년 동안 내가 매일 끊임없이 떠오르는 오만 가지 질문과 함께 사투를 벌여온 태초의 수프라 할 땅이자 평면”이라고 설명했다.

 강명희씨는 불자들과 일반 관람객의 성원에 힘입어 약천사에서 이 ‘일점(一點) 전시회’를 연속해 열기로 했다. 오는 2월에는 6m가 넘는 ‘강’, 4월에는 7m가 더 되는 ‘먼지’ 딱 한 점씩을 건다. 명맥이 끊어진 듯 보이던 사찰 불화의 현대화가 바다 위 한 점 섬에서 다시 불을 댕기고 있다.

그림 향기가 넘친다, 폐교

무릉갤러리 짓고 운동장엔 조각공원, 백광익 제주 오현고 교장

백광익 오현고 교장은 제주 대정읍 무릉리 무릉중학교 안에 교실 두 개를 터서 만든 갤러리가 서울의 이름난 갤러리보다 더 근사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작품 ‘오름 위에 부는 바람’ 앞에서 “내가 바닥 깔고 못질하며 몸으로 때워 더 애정이 간다”고도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백광익(58) 제주 오현고 교장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제주 토박이요 마당발로 이름난 그를 찾는 형님 동생들 안부 인사와 자잘한 부탁 탓이다.

 “이게 제 재산이죠. 맨 손으로 국제예술센터를 만들겠다고 나선 힘입니다. 교육청에서 문 닫은 중학교 건물 하나 빌려서 지금부터 시작이지만 잘 될 거라는 믿음이 있는 건 이들 선후배 때문입니다.”

 10여 년 전 폐교한 제주 대정읍 무릉리 무릉중학교 자리에 문을 연 무릉갤러리는 백 교장의 오랜 꿈이 무르익어가는 곳이다. 제주도가 앞으로 먹고 살 길은 문화예술 진흥 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린 그는 전국의 작가들을 제주로 불러 모아 그들의 콘텐트를 제주에 심게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낡은 본관 교실을 수리해 작업실을 13개 만들었습니다. 며칠 전 잘 아는 몇 분 작가를 초청해 직접 자고 먹으며 생활하게 한 뒤 불평 사항을 들었는데 한마디로 ‘완벽하다’는 평이 나왔어요. 바다와 바람, 바로 제주의 자연이 일등 공신이죠. 수백 년 된 소나무가 둘러싼 교실에 들어앉아 작업하다가 지치면 나가서 바다 바라보고 바람 맞고 하니 더 좋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는 내년 5월부터 7월까지 국제 조각 심포지엄을 열어 널찍한 학교 운동장을 무릉조각공원으로 만들겠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이 공간이 국제적인 이름을 얻게 되고 제주의 문화 콘텐트가 되리라는 구상이다.

 “본관 뒤쪽 교실도 계속 고쳐서 작업실을 12개 더 만들고 공동작업실에 식당도 만들 겁니다. 마을주민회에서 작가들이 들어오면 돌아가며 밥을 해주겠다니 이 동네도 함께 살아나는 효과를 얻게 될 것 같아서 신이 납니다.”

 그는 1~2년 단위로 이 무릉갤러리에 들어와 작업하고 싶은 작가들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 후반을 위해 이 공간을 소중하게 키워가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미술교사, 교장 노릇 하느라 소홀했던 화가의 본분을 더 늦기 전에 불태우고 싶다”는 것이다. “꼭 화가나 조각가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서예, 평론, 글쓰는 분들에게도 교실을 드리고 싶어요. 함께하실 수 있는 진심만 있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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