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전문가 "그레이펀드 실시는 바람직, 시점은 부적절"

중앙일보

입력

19일 금융감독원이 도입을 공식발표한 그레이펀드에 대해 증권,투신업계의 채권전문가들은 대체로 채권시장 활성화를 위해 그레이펀드제도의 도입이 대단히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특히 가뜩이나 낙후한 한국채권시장을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그레이펀드의 도입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한국투신의 주원규 채권운용팀장은 “현재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대부분기업들의 회사채가 기껏해야 BB등급에 불과한 상태라 그레이펀드가 없이 채권상품을 운용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다”며 “이를 통해 다양한 등급의 회사채들이 유통되면서 시장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그레이펀드의 도입이 시장의 불확실성을 채권상품을 통해 흡수함으로써 시장위험관리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은투신운용의 신세철 상무는 “지난해까지 대우회사채가 대부분 A등급이었던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국채권시장에서는 위험과 불확실성에 대한 평가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며 “그레이펀드를 통해 각종 등급에 따른 적정한 수익률과 위험관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제도도입 자체의 긍정적 효과와는 달리 현 시점이 그레이펀드제도 도입의 적정한 시점인지와 목표한 고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는 대부분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대한투신 권경업 채권운용역은 “올해 BB+채권도 12%의 수익률을 올렸는데 감독당국이 전망하는 16%의 수익률은 C등급이하에서나 가능한 사채시장 수준”이라며 이런 고위험상품에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주은투신운용의 신세철 상무도 “대우사태로 채권시장이 지극히 어려운 상황이라 제도의 긍정적 취지에도 불구하고 시점선택이 다소 잘못됐다”고 평가했다.

또 대한투신의 한동직 채권운용부장은 “이 제도가 시행된다면 현재 부실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투신권의 유동성을 개선해주고 활성화정도에 따라 중소기업의 회사채발행도 가능해 질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최근에는 금융시장 불안이 실물경제에도영향을 미치고 있는 단계라 이같은 펀드투자의 위험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 초기투자자를 모으기 쉽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제도정착을 위해 감독당국이 힘써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투신관계자들은 펀드운용과정의 원금손실을 투신사들이 부담할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투신업계에 더 큰 짐이 될 것을 우려했다.

한편 투신업계는 회사별 부실채권 문제와 세금문제, 공모주 청약과의 연관성문제 등에 관해 투신협회를 중심으로 업계의견을 모은 후 상품을 도입키로 했으나 회사간 견해차이 등 선결문제가 많아 빠른 시일내에 발매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서울=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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