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부모님 형편 뻔히 알지만 우주과학자 꿈 접을 순 없고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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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우주 항공과 관련된 산업체·연구소를 운영하고 싶습니다. 우주인 이소연 누나와 나로호 발사가 꿈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됐죠.”

 올해 서울대 기계우주항공학부에 합격한 전남 여천고 3학년 한성근(18·사진)군의 말이다. 그는 원서를 낸 연세대·성균관대·한양대에 모두 합격했다. 그의 목소리에선 결연한 의지가 묻어났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등록금 마련이 힘든 상황이지만 우주공학도가 되겠다는 ‘꿈’만은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다.

 한군의 아버지(48)는 1급 청각 장애인이다. 변변한 직업 없이 한군 큰아버지(52)의 고깃배를 타거나 이웃 사람들의 농사일을 도우며 생활한다. 어머니 김모(40)씨 역시 다섯살 때 교통사고로 인한 고열로 청력을 잃고 왼손까지 마비된 1급 장애인이다. 그 때문에 시청에서 받는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이 한군 가족의 주요 생계 수단이다. 세 살배기인 막내 여동생 외에도 두 명의 여동생이 각각 고등학교·중학교 1학년이다. 이들 6명의 가족은 국민영구 임대아파트에서 생활한다. 그래서 한군은 중·고등학교 때 학원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했다. 그는 “장애가 있는 부모님을 모시려면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장학금을 받은 친구가 100만원 넘는 돈을 제 부모님께 줬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 열심히 공부하면 나도 언젠가는 도와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됐죠.”

 중학교 때 전체 학년에서 50등 수준이었던 한군이 공부벌레가 된 계기다. 고교 진학과 함께 태어난 막냇동생도 마음을 잡게 했다. 우주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할 공학도가 되겠다는 꿈과 목표가 생긴 것도 그 무렵이다. 한국사 경시대회·모의토익·논술경시대회·과학경진대회·수학경시대회에 참가해 전남도교육감과 전남도지사 표창을 빼놓지 않고 받았다. 공부하는 틈틈이 사회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그는 서울대 수시모집에서 언어·수리·외국어 등 전 영역에서 1등급을 받았다.

 고비도 있었다. 고등학교 1·2학년 때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지만, 3학년에 올라와 10등 밖으로 밀리기도 했다. 평소 가장 자신 있었던 수학 성적이 크게 떨어져서다. 한군은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 문제만 풀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이때 참고서를 보며 전체적인 개념정리에 주력해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말했다. 3학년 담임인 박경우(화학) 선생님의 도움도 잊을 수 없다. 공부에 대한 조언뿐만 아니라 나태해지려는 그에게 ‘환경을 되돌아보라’며 따끔한 충고를 해줬다. 박 교사는 “성근이는 어려운 형편을 내색조차 하지 않는 활달한 학생이다. 할머니와 아버지 일도 곧잘 도와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군은 “서울대를 가고 싶지만 나만 생각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면서 “등록금·생활비뿐만 아니라 동생들 학비 때문에 걱정”이라고 말했다.

여수=유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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