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영 기자의 장수 브랜드]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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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1974년 6월 출시된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는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공우유(흰 우유 외에 다른 맛을 낸 우유) 시장 점유율 80%를 차지하고 있는 제품이다. 하루 평균 약 80만 개, 한 해 2억5000만 개가 팔려 나간다. 70년대 초 정부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값에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우유 소비를 장려했다. 하지만 흰 우유 소비는 생각만큼 늘지 않았다.

 그러자 정부는 식품회사들에 우유에 다른 맛을 가미한 가공우유 제품 개발을 독려했다. 식품회사들은 초코맛, 딸기맛 우유 등을 내놨지만 시장의 반응은 생각만큼 뜨겁지 않았다. 그러던 중 빙그레 연구팀은 당시 비싸고 귀했던 바나나를 활용한 우유를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고급 과일의 대명사였던 바나나는 과즙을 내기 어려웠고, 가격도 비싸 가공식품 원료로 사용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빙그레는 궁리 끝에 바닐라 향과 각종 재료의 조합으로 바나나맛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봤고, 1년이 넘는 연구 끝에 바나나를 쓰지 않고도 바나나맛이 나는 우유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풍부한 맛을 내기 위해 우유 함량을 85%까지 높였고, 용량도 당시 가공우유에서 일반적이던 180mL나 200mL가 아닌 240mL로 늘렸다. 시각적인 효과를 위해 바나나의 노란색이 겉에 비치는 반투명으로 만들었다. 용기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항아리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회사 내에선 보관이나 진열이 힘들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모험을 한 것이다.

 이 제품은 최근 한 차례 고비를 맞았다. 개정된 ‘축산물 가공품 표시 기준’에 따라 과즙을 넣지 않으면 ‘바나나맛 우유’라고 표기할 수 없게 된 것. 빙그레는 이번엔 진짜 바나나 과즙을 넣으면서도 맛과 색을 예전과 똑같이 만드느라 비상이 걸렸다. 전국의 바나나맛 우유 매니어 1000여 명을 선발해 50차례 이상 테스트를 했다. 이들 중엔 10년 넘게 매일 한 개 이상 바나나맛 우유를 마셔왔다는 ‘고수’들이 즐비했다. 그 결과 천연과즙 1%를 넣은 바나나맛 우유가 예전 맛과 가장 흡사하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빙그레는 과즙을 넣은 뒤에도 변하지 않은 맛과 색으로 올 매출액이 지난해에 비해 10%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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