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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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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는지의 여부는 인류의 오래된 물음 중 하나다. 이에 대한 17세기 철학자 데카르트의 답은 ‘아니다’였다. 인간만이 영혼을 갖고 있으며 동물은 영혼이 없는 기계와 마찬가지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그의 추종자들이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며 즐기고, 동물이 고통에 겨워 지르는 비명을 기계의 파열음(破裂音) 정도로 여겼던 건 그래서였을 터다.

 그러나 구석기 시대 이래로 인류는 동물의 영혼을 믿고, 그 영혼을 달래는 의식(儀式)을 치른 흔적을 숱하게 남기고 있다. 알타미라 동굴벽화나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대표적이다. 동물이 등장하는 이 그림들은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의미와 더불어 사냥된 동물의 영혼에 대한 속죄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거다. 동물의 뿔에 온갖 동물 모습을 새긴 청동기 시대 조각 역시 동물에게도 인간과 같은 영혼이 있다고 믿었던 애니미즘(animism)의 흔적으로 간주된다.

 동서양의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인면수신(人面獸身)’ 혹은 ‘반인반수(半人半獸)’ 형상의 의미도 다르지 않다. 인간과 동물이 동등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음을 보여주는 것이란다. 동물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는 종교도 있다. 이슬람교가 그중 하나다. 이슬람교도들이 동물 서커스와 동물원을 금기시하는 까닭이다.

 한국 사회엔 인간을 위해 희생된 가축의 혼과 넋을 달래는 축혼제(畜魂祭) 문화가 있다. 주로 국립축산과학원 같은 가축실험연구기관이나 도축장(屠畜場)에서 축혼비(畜魂碑)를 세우고 정례적으로 제사를 지낸다. 조상에 올리는 제사 못지않은 극진함이 담기는 건 물론이다. 신위(神位)엔 우공(牛公), 돈공(豚公)이라고 적는다. 이를테면 ‘현고우공신위(顯考牛公神位)’다. 제문(祭文)은 ‘우리 인간과 함께 죽고 사는 심오한 길을 묵묵히 알려주는 착하고 착한 축생들 앞에 고개 숙여 혼령을 위로하나이다’라는 식이다. 인간의 영혼과 동물의 영혼에 경계가 없다고 믿는 행위라 할 만하다.

 성균관유도회 안동시지부 주관으로 어제 경북 안동시 시민회관 앞마당에서 축혼제가 열렸다. 안동에서 시작된 구제역으로 희생된 소와 돼지 14만여 마리의 혼을 달래는 자리였다. 느닷없이 무참하게 매몰돼야 했던 가축들의 원통함을 안타까워했을 터다. 만약 가축들의 영혼이 있다면 그나마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축혼제를 계기로 구제역이 하루빨리 퇴치돼 축산 농가의 시름이 덜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김남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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