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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시장경제 두 토끼 잡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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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김종석
홍익대 교수

대한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중에 유일하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성공적으로 이루고 선진국 문턱에 다가선 나라라고 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나 시장경제나 모두 의사결정 과정이 분산돼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정치적 의사결정이 집중되면 독재가 되고 민주주의는 파괴된다. 경제적 의사결정이 집중되면 독과점 또는 관치경제가 되어 지배력 남용과 불공정거래가 확산되고 시장경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권력 분산과 상호 견제를 통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려 하고, 시장경제는 소비자 선택과 경쟁 촉진을 통해 경제활동 기회를 늘리고 국민 생활수준 향상을 추구한다.

 그러나 바로 이런 분산과 견제의 의사결정 원리 때문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그 과정이 항상 시끄럽고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권위주의 독재체제나 관치 계획경제는 의사결정 과정이 일사불란하고 효율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역사적 경험은 이들 체제들이 결국 정화기능 상실과 의사결정의 경직성으로 인해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면서 붕괴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1970년대 유신체제와 소비에트 계획경제의 붕괴가 그 증거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바로 그 의사결정의 분권화라는 비효율적 특징 때문에 장기적으로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일 수 있다. 우리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얻은 지혜 때문이다.

 이 두 제도는 당연히 보완관계여야 할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원리와 시장경제 원리는 많은 경우 서로 상충되기 때문에 두 제도를 함께 발전·정착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타협과 상생을 추구한다. 정치적 의사결정은 대화와 토론, 여론 수렴을 통해 투표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이다.

 반면 시장경제는 사람들의 잘살겠다는 경제적 욕구가 원동력이다. 시장경제에서 경제적 잉여는 시장 거래를 통해 창조된다. 경제적 의사결정은 누가 거래 상대방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투표가 아니라 경쟁력으로 승부가 결정된다. 따라서 효율을 기본원리로 하는 경제원리와 상생을 기본원리로 하는 정치논리는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대·중소기업 간 납품단가 조정이나 기업형 수퍼마켓의 주택가 진출이나 감세논쟁, 심지어 대기업 유통체인의 피자와 튀김닭 판매를 둘러싼 논쟁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치논리와 경제논리와의 충돌이다.

 그리고 경제 문제는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 없고, 모든 사람에게 원하는 것을 다 해줄 수 없다는 현실 제약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약과 선택, 차별적 보상과 자기책임원칙이 기본원리다. 경우에 따라서는 괴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경제 문제다.

 모든 문제를 경제논리로만 결정할 수는 없지만 먹고사는 경제 문제를 정치논리로 접근하면 결국 낭비와 비효율, 나눠먹기 풍조와 고비용·고가격 경제구조를 초래해서 국민 생활수준의 전반적 하락을 초래할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경제발전이나 경제개혁에 성공한 정부의 공통점이 경제 문제에 대한 정치논리의 지배를 철저하게 막았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원칙이고, 시장경제는 경쟁이 원칙이다. 경제 문제를 다수결로 해결하려 한다든지, 정치 문제를 경쟁원리로 해결하려 한다면, 민주주의나 시장경제는 모두 퇴보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여론조사와 다수결로 경제 문제를, 그리고 경쟁과 효율성 논리로 정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이것이 지난주 우리 정부와 국회의 모습이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성공적으로 이룬 나라인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할 듯하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