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체전]불운에 운 소년가장 레슬링 선수, 이봉수

중앙일보

입력

12일 인천 동부학생체육관에서 벌어진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97㎏급 예선 첫 경기. 한 선수가 전반을 마친 뒤 매트 위에 쓰러지자 감독이 다급하게 기권을 외쳤다.

손발이 마비증세를 보이며 실신상태에 빠진 이 선수는 곧 병원으로 옮겨져 의식을 회복했다. 그러나 "휴식을 요한다" 는 진단을 받았다.

불행의 주인공은 레슬링 꿈나무 이봉수(16.함평실고).

금메달 후보로 꼽히던 그에게는 날벼락과 다름없었다. 자신보다 체구가 큰 고3 선수를 상대로 2 - 0으로 앞선 가운데 불운이 닥쳤다. 14일 벌어질 자신의 주종목인 자유형 출전도 불투명해졌다.

이봉수는 소년가장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도 그의 곁을 떠났다. 형제조차 없는 이봉수를 큰아버지가 거뒀지만 어려운 형편에 제대로 돌보기는 힘들었다.

이봉수는 전남 영광의 송흥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염산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레슬링과 인연을 맺었다. 체육관에서 먹고 자며 맹훈련을 계속한지 3년만인 지난해 전국소년체전에서 2관왕에 오르며 장래성을 인정받았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외로움을 매트 위에 내던진 결과였다.

이봉수의 사정을 잘 아는 전남대표팀의 홍준희 감독은 안타까움에 가슴을 친다. "봉수의 특기인 안아띄우기에 걸리면 안 넘어갈 선수가 없다" 며 눈앞에서 놓친 금메달을 아쉬워했다.

"어떡하든 자유형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내겠다" 며 투지를 불태우던 이봉수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있다.

"혈액검사 결과는 이상이 없다. 심리적 부담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보인다" 는 의사의 진단이 이봉수에게는 유일한 희망이자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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