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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요지경 계산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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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이정재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해묵은 갈등이 다시 시작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지난 주말 끝난 재협상이 빌미가 됐다. 야당의 ‘당장 폐기’ 주장에 여당은 ‘결사 비준’으로 맞서고 있다. 시민사회도 덩달아 크게 갈렸다. 폐기 쪽은 ‘굴욕과 퍼주기’를 이유로 든다. 미국에 너무 내줬다는 것이다. 야당이 내민 계산서는 ‘미국 적어도 4조원, 한국 잘해야 4000억원 이득’이다. 이 계산이 맞다면 손실이 이익의 10배다. 당장 폐기해야 국익에 맞을 듯하다.

 정부·여당의 계산은 다르다. 미국의 추가 이득은 많아야 5000억원 정도다. 반면 한국의 총 이득은 36조원이 넘는다. 재협상 타결로 FTA 발효를 3년 앞당기게 됐다는 게 근거다. 논리는 이렇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매년 12조원가량(▶국내총생산 약 6조원 ▶소비 약 2조9000억원 ▶외국인 투자 약 2조7000억원 증가 등) 경제 이득이 생긴다. 그냥 뒀으면 2015년에야 발효될 것을, 재협상 타결로 2012년으로 3년 앞당겼으니 36조원 이득이란 것이다.

 같은 참치 요리를 시켰는데 계산서가 달라도 유분수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우선 보는 눈이 달라서다. 야당은 이번 재협상만 봤고 여당은 3년 전 협정 전체를 봤다. 게다가 서로 보고 싶은 것만 봤다. 여야 모두 자기 쪽에 유리한 ‘기회비용’을 따졌다. 야당은 ‘자동차 관세 철폐를 4년 안 늦췄다면’을, 여당은 ‘FTA 발효가 3년간 미뤄졌다면’을 들이댔다. 예컨대 참치 요리 재료비를 따지는 데 한쪽은 누가 공짜로 줬을 때의 비용을, 다른 한쪽은 직접 배를 몰고 원양에 나가 잡아오는 비용을 계산한 꼴이다.

 어느 말이 맞을까. 속 시원하게 검증해봤으면 좋겠는데 막상 쉽지 않다. 우선 경제란 게 생물이어서, 연습해보기 어렵다. 해본들 과거의 잣대로 미래를 재는 것이라 잘 들어맞지 않는다. 어떤 요소를 넣고 빼느냐에 따라 결과도 크게 달라진다. 경제 손익 따지기도 이럴진대, 한·미 FTA에는 한술 더 떠 경제 외적인 변수가 지나치게 많다. 안보·동맹은 물론 반미-친미, 사대-자주 등 인화성 강한 갈등 요소가 모두 녹아 있다. 자칫 광우병 사태처럼 번지면 비용 계산이고 뭐고 무의미해질 수 있다.

 이럴 땐 이웃의 계산법을 빌리는 것도 괜찮은 대안이다. 내가 땅을 샀는데 이웃이 많이 배 아파한다, 그러면 잘 산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판단엔 대개 경쟁 관계에 있고 사이 나쁜 이웃일수록 더 도움이 된다. 마침 우리 옆엔 중국·일본이 있다. 여러모로 ‘서로 좋은’ 이웃은 아니다. 일본의 계산서는 손해, 많이 배 아파하는 쪽이다. 아사히신문은 한·미 FTA 발효로 10년 뒤인 2020년 일본이 받을 타격을 5조2000억 엔(약 71조원)으로 추산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은 (한국처럼) 할 수 없다”며 자조했다. 자국민에 경각을 주려는 언론 특유의 과장을 감안해도 강도가 세다.

 일본은 한국의 FTA를 ‘현대판 경제 영토 확장’이라며 드러내놓고 경계한다. 두 달 전 NHK는 특집 ‘기세를 더해가는 한국의 FTA’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한국과 FTA를 맺은 지역을 세계 지도상에 붉은색으로 표시했다. 10월 초 한·유럽연합(EU) FTA 서명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 기자의 첫 질문은 “왜 한국을 첫 번째 상대로 선택했는지, 일본과 협정을 맺을 의향은 없는지”였다. 일본 내각부는 한국이 중국까지 FTA 영토에 넣을 경우 일본의 국내총생산이 연간 6000억~7000억 엔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강도는 일본보다 많이 낮지만 중국의 계산서도 손해 쪽이다.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는 “한·미 FTA로 한·미 동맹 관계가 한층 강화되는 반면 한국의 중국 의존도는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내년 국회 비준까지 온갖 계산서가 판을 칠 것이다. 이해가 다른 눈으로 보면 그런 요지경 계산서가 없을지 모른다. 그중 어떤 계산서를 집어드느냐에 한국의 미래가 달렸다. 적어도 일본·중국이 고소해 할 계산서는 아니길 바란다.

이정재 중앙SUNDAY 경제·산업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