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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해외 진출, 소매금융·IT를 무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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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택수
국제금융센터 이사장

한국의 국격을 한 단계 격상시킨 서울 올림픽이 끝난 지 20여 년이 넘고,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지도 10여 년이 넘었다. 올해에는 서울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로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이 같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별로 변하지 않은 게 있다. 우리나라 은행산업이 그렇다. 국제화 수준이라는 면에서 질적으로 과거와 비해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우리나라 은행들의 해외매출액 비중은 과거 20년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전체의 1~2% 수준에 머물고 있다. 불과 20~30년 사이에 제조업의 수출 규모가 수백 배로 증가한 것과 비교할 때 은행들은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은행산업의 경우 이미 기업금융보다 주택대출 등 주로 가계금융에 의존한 성장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 있다. 중장기적으로 국내에서는 성장세의 둔화가 불가피하다고 본다. 가계금융의 수요 측면을 살펴볼 때 노동력의 주축인 30~40대의 인구는 이미 2006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불과 몇 년 뒤인 2016년부터는 생산 가능 인구(15~64세)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비교적 소득이 높은 계층들이 가계부채의 상당부분을 점하고 있어 가계부채의 질적 수준이 급속히 악화될 염려가 없다 해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우리의 가계부채 규모도 점차 한계에 육박하고 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따라서 은행산업은 국내에서의 중장기적인 성장 둔화에 대비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해외진출을 추진해야 할 시급하면서도 매우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그동안 우리 은행산업의 해외 진출에 대해 금융회사 임직원들이나 금융당국도 그 필요성은 납득하면서도 수많은 현실적인 장벽이나 위험 요소 등을 이유로 국내 기업들의 해외진출 동선을 따라 해외 점포를 확장 배치하는 데 급급했다. 최근에는 몇몇 은행이 그저 해외 은행을 인수하면 되는 것인 양 설익은 전략으로 나서고 있어 불안한 감이 없지 않다.

 신성장 동력에 대한 은행 경영층의 확고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완성도가 높고 잘 짜인 해외진출 전략이 없는 상황에서는 은행산업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물론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뒤처지고 있으며, 원화가 달러화 등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다른 통화에 비해 국제적인 신인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국제금융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함에 있어 갖추어야 할 기본적 환경과 조건에서 근본적으로 열세라는 의미다.

 하지만 기축통화인 달러를 내세워 주로 투자은행이나 도매금융 분야에서 세계 금융시장을 압도하고 있는 영·미 은행들과는 전혀 색다른 방법으로 해외진출을 모색하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가령 소매금융 위주의 해외진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와 경제규모 등이 비슷한 스페인의 산탄데르은행의 경우 소매금융을 중심으로 영국·멕시코·브라질·칠레·포르투갈 등 5개국에서 모두 최소한 1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성공적인 해외진출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또한 은행산업의 해외진출 시에는 반드시 우리의 장점인 정보기술(IT)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전략을 구사해야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고 본다.

 산탄데르은행의 성공은 국내외에서 동일한 IT 플랫폼을 예외 없이 적용해 비용 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산탄데르은행이 해외에 진출하면서 동일한 IT시스템을 적용하기 어려운 은행은 처음부터 인수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한택수 국제금융센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