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자동차박물관을 세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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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후반 들어 전국 각지에 많은 박물관이 세워졌다. 목포의 해양박물관, 농협중앙회 내의 농업박물관, 태백시의 석탄박물관, 강릉시의 축음기박물관, 용인시의 등잔박물관, 경기도 파주의 중남미박물관 등 단체와 개인들이 앞다투어 다양한 주제의 박물관을 설립하고 있다.

오래 됐거나 희귀한 유물과 자료를 효율적으로 관리.보관하기 위해 박물관 건립은 매우 바람직하다. 또한 박물관은 학생이나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교육과 정보 습득의 장(場)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관광자원으로도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박물관이라 하면 옛 유물을 전시하는 기능만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박물관은 학자들에게 자신의 학문 분야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의 보고이며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는 과거의 훌륭한 인류 유산을 알려주는 중요한 장소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에 아직도 자동차박물관이 없다는 점은 이해할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은 반도체 산업과 더불어 국가 기간산업의 중추다.

우리나라는 지난 97년 국내 6개 자동차회사에서 2백80여만대의 자동차를 생산,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으로 거듭났다.

또 자동차 산업에 직간접적으로 고용돼 생활하는 사람이 1백66만명이 넘으며 자동차 관련 분야 생산액이 44조원에 이른다.

6.25 이후 황폐한 산업터에서 자체적으로 자동차 산업을 일궈낸 한국인의 열의는 전세계를 감탄시켰다. 자동차를 자체적으로 설계, 생산해 낸 나라는 손꼽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옛날 만들었던 초창기의 자동차뿐만 아니라 20여년 전에 생산한 자동차도 볼 수 없다.

생산회사가 도산하거나 바뀐 이유도 있겠지만 자동차에 대한 체계적인 수집.관리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몇몇 차종은 개인이 보유한 경우도 있지만 대중이 이를 보기 위해 접근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우리나라에 자동차박물관이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보유대수가 97년 11월 이후 전국적으로 1천만대를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에 자동차박물관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동차는 고가품이라 개인이 여러 차종을 수집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덩치가 커 유지.보관도 힘들다.

또 현행 법규상 개인이 운행하지 않은 채 자동차를 보관만 하고 있어도 자동차세를 내야 한다. 게다가 자동차를 개인이 수집할 경우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개인의 자동차 수집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하기 어려운 차종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으므로 자동차박물관을 이른 시일 안에 만들어야 한다.

자동차 제작사도 좋고 관심있는 지방 정부나 단체도 좋다. 자동차를 사랑하는 단체나 회사가 자동차박물관을 건립하고 자동차 축제라도 개최해보는 것이 어떨까. 자동차 선진국이란 자동차 보유량이 늘어나고 신기술만 개발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자녀들을 데리고 자동차박물관에 가 자동차의 발전 과정과 기능.구조를 함께 살펴보고 예전에 우리 부모님들이 처음으로 탔던 자동차를 보여주는 색다른 경험이 자동차 문화도를 높이는 길이 될 것이다.

외국의 예를 보면 자동차를 직접 생산하지 않는 나라에서도 자동차박물관은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이른 시일 안에 자동차박물관을 건립해 자동차 생산국으로서 위상을 높여야 한다.

더불어 자동차 문화의 수준을 높이고 옛날 자동차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하자.

김은태(金殷泰.한국자동차공학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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