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 싹쓸이식 비자금 수사, 급제동 걸린 검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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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5일, 서울 공덕동 서부지방검찰청사는 하루 종일 한산했다. 한화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 중인 형사5부 수사팀이 있는 8층의 사무실 대부분이 불이 꺼진 채였다. 주말에도 직원들이 출근하는 등 북적였던 지난주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한화그룹 전 재무총괄책임자(CFO)인 홍동옥(62) 여천NCC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검찰 수사가 위축되는 분위기다. 홍 사장 구속에 전력을 쏟았던 검찰에 법원의 영장 기각은 충격을 줬다. 한화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의 핵심 관련자에 대한 첫 번째 구속영장이었기 때문이다. 검찰이 밝혀낸 홍 사장의 혐의만 7개에 달할 정도였다. 지난 3일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은 사안의 중대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홍 사장이 조성·관리한 비자금이 수천억원에 달하고, 김승연(58) 한화그룹 회장 일가의 회사로 의심되는 차명주주 회사를 위해 계열사에 끼친 손해 역시 수천억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우철 영장전담 판사는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없다”며 검찰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홍 사장을 구속한 뒤 압박해 김승연 회장의 지시 여부를 밝혀내려던 검찰의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김 회장의 추가 소환 역시 연기가 불가피해 보인다. 검찰은 지난 1일 김 회장을 소환 조사한 뒤 “조사할 내용이 많이 남아 여러 차례 더 불러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홍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법원 측이 “방어권 보장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영장 기각 이유를 밝힌 만큼 구속 수사는 여의치 않을 전망이다. 홍 사장 측 역시 영장에 적시된 대략의 사실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경영상의 결정이었을 뿐 범죄 행위가 아니다”라고 검찰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고 한다.

 ‘싹쓸이식 강압수사’라는 비판도 거세지게 됐다. 검찰은 지난 9월 16일 한화그룹 본사와 한화증권 여의도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계열사와 협력사 10여 곳을 무차별적으로 압수수색했다. 그룹 재무 담당 임직원들을 연일 소환 조사한 끝에 김 회장까지 불러 조사했다. 과도한 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검찰은 “기업 비자금 수사는 어둠 속에서 바늘을 찾는 것처럼 힘든 과정”이라고 해명해왔다. 하지만 수사 성과가 미미한 데다 영장마저 기각되면서 “환자(기업) 죽이는 치료(수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어졌다. 대검에서도 이번 수사과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서부지검 수사팀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됐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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