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은 세계 최고 자부 …루브르 박물관도 우리 비데 쓰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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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호 22면

권지혜 대표

“비전이라는 말을 7년 만에 처음 들어봤습니다.”
올 3월 권지혜(35) 대표 방을 찾은 한 직원이 말했다. ‘국내 비데의 원조’로 불리는 삼홍테크를 인수해 사장으로 취임한 직후였다. 깜짝 놀랐다. “많이 망가져 있겠거니” 짐작은 했다. 그러나 짐작보다 더 했다. ‘비데 업계 사관학교’라는 명성은 간 데 없었다. 회사 전체가 패배감에 싸여 있었다. 치열하게 뛰어야 할 영업맨들은 경쟁사로부터 ‘공무원같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회사 분위기를 바꾸는 게 급했다. 그때부터였다. 중견 건설회사(아이에스동서) 오너의 맏딸인 그에게 삼홍테크 정상화란 과제가 두 어깨에 얹어진 것은.

여성임원의 리더십 ⑬권지혜 삼홍테크 사장

-회사 분위기가 그렇게 안 좋았나.
“월급을 못 받기도 했단다. 그만두는 직원도 많았다. 경쟁사로 옮긴 이들도 꽤 됐다. 밖에서는 ‘삼홍테크가 그렇게 망가졌는데 아직까지 버티냐’고 비아냥댔다고 한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되레 무능력한 사람 취급을 받은 거다. 그런데 내가 와서 ‘세계 1등’ ‘한국의 토토(일본 1위 비데회사)가 되자’고 했다. 서른댓 살의 새파란 사장 얘기니 시큰둥했을 것이다. 그러나 허황된 얘기가 아니다. 모회사 아이에스동서(일신건설산업과 건설자제업체 동서산업의 합병회사)와의 시너지, 삼홍테크의 기술력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회사 인수 후 8개월 지났다. 그간 얼마나 바뀌었나.
“아직 변혁의 결과를 얘기할 때는 아니다. 하지만 직원들이 무기력 상태에서는 벗어난 것 같다. 실적이 눈에 띄게 는 건 아니지만 직원들의 자세가 달라졌다. 임원급만 모여 하던 회의도 과장급 이상이 모여 같이 한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같이 알자는 취지다. 예전엔 심지어 삼홍테크 안의 일을 밖의 경쟁 회사 사람들이 더 잘 알았다.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 거다. 그런 걸 다같이 참여하는 회의를 통해 바꿔가고 있다. 우리끼리는 서로 비밀 없이 공유하고, 대신 밖에는 우리 숟가락이 몇 개인지 비밀을 지키자는 거다. 회의에서는 맨 밑의 직원부터 말을 한다. 그래야 윗사람들은 생각 못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젊은 사장이 부실 회사에 왔다. 당연히 구조조정 바람도 거셌을 텐데.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삼갔다. 처음부터 ‘세계 1등 비데 회사’라는 비전을 내걸고 다같이 뛰자고 했다. 새벽 2시까지 회의도 했다. 사장이 눈에 불을 뿜으며 비전을 말하니 대충대충 회사 다니던 사람들은 힘들어했다. 그런 분들은 알아서 떠났고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올해 우리 매출액이 130억원 정도다. 그런데 연구개발(R&D) 인력만 12명이다. 객관적으로 많은 편이다. 그러나 매출 규모에 맞춰 사람을 자르면 삼홍테크의 미래는 없는 거다. 있는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해서 실적을 올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첫 3개월 동안은 직원들에게 인상 많이 썼다. 이때 싫은 소리한 게 내 사회생활을 통틀어 한 것보다 더 많은 정도였다.”

-비데는 성장산업인가.
“그렇다. 국내 시장은 연 80만~90만 대, 약 3000억원 안팎이다. 꾸준히 늘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춤하고 있다. 건설 시장 침체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은 연 360만 대, 2조5000억원 정도다. 대수로는 4배, 금액으로는 8배에 달한다. 그만큼 일본에선 고부가가치의 제품이 많이 팔린다는 얘기다. 우리도 그런 쪽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국내 업체의 전략은 여전히 ‘가격 파괴’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다가는 공멸할 수 있다. 국내 성장은 제한적이지만 해외로 눈을 돌리면 얘기가 다르다. 중국을 봐라. 빠르게 크고 있다. 중국엔 1년에 50여 개 업체가 새로 생겨난다고 할 정도다. 상하이·베이징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연 10%씩 성장한다. 그런데 중국 제품은 일본 것을 베낀 수준에 불과하다. 품질이 떨어진다. 불량률이 20~40%쯤 된다고 한다. 게다가 중국의 4000만 부자들은 ‘일체형 비데’를 선호한다(일체형은 비데와 변기가 하나로 돼 있는 고급형이다). 삼홍테크는 도기 일
체형 비데에 특히 강점이 있다. 우리가 중국 진출에 힘을 쏟는 이유다.”

-비데의 기술력 차이가 그렇게 큰가(권 대표는 인터뷰 내내 “삼홍테크의 기술력은 최고”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비데는 사람의 피부가 직접 닿는 기기다. 작은 불량에도 민감하다. 자칫 앉았을 때 전기가 흐를 수도 있다. 습도가 높은 여름철에는 부식이 생기고, 가끔 화재도 난다. 그런 불량을 최대한 없애는 게 기술력이다. 보통 비데 대리점은 비데를 팔고, 설치하고, 수리해서 돈을 번다. 그런데 삼홍테크 비데는 고장이 안 나서 대리점이 비데 수리로는 돈을 못 번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불량률이 낮다. 해외에서도 삼홍테크의 기술력은 인정해 준다. 내심 일본의 토토와도 견줄 만하다고 본다.”

-그러나 국내 1위는 아니다.
“아쉽게도 그렇다. 삼홍은 국내에서 연간 7만 대쯤 판다. 10만 대 넘게 파는 노비타에 이어 2위다. 그러나 수출은 삼홍이 가장 다양한 지역에 한다. 그만큼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얘기다. 7월에는 우리 비데가 이탈리아 비데 전문 판매업체인 유케어를 통해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5대 설치됐다. 일본·미국·중국 등 5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초에는 남극 세종기지에 우리 비데를 3대 증정, 설치했다. 내년엔 중국·일본의 대형 바이어를 잡는 게 목표다.”

슬쩍 궁금해졌다. 미국 컬럼비아대를 나온 재원. 훤칠한 키에 뛰어난 미모. ‘엄친딸’ 소리 꽤나 들었을 법했다.

“얼마 전 한 신문에서도 나를 ‘엄친딸’이라고 소개했다. 전혀 아니다. 칭찬을 받거나 남의 시샘 속에 자란 편은 아니다. 되레 콤플렉스 투성이다.”

그는 경영 수업도 차근차근 받은 바 없다고 했다. 유학 후 귀국해 아버지 회사의 마케팅을 맡게 됐고, 그러다 보니 경영에 재미를 붙이게 됐다. 아버지(권혁운 대표)가 오너인 중견건설회사 아이에스동서가 삼홍테크를 인수했고 그 과정에서 대표를 맡게 됐다. 규모가 작은 회사라지만 대표 자리는 달랐다고 한다. 어깨가 많이 무겁다고 했다. 뭔가 이뤄놓고 당당히 평가받고 싶다고 했다. 물론 뜻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자신은 있다.

“사실 언론 인터뷰를 할 만큼 아직 해낸 게 없어 부끄럽다. 그런데도 인터뷰에 응한 건 회사와 제품 홍보에 도움이 되겠거니 해서다. 아직 홍보에 큰돈을 쓸 여건은 안 된다. 대신 사장이 지면에 등장하면 돈 안 들이고 홍보하는 셈 아닌가. 그런데 막상 회사 홍보는 안 되고 ‘아 그 젊은 여자 사장’만 기억하는 이들이 많더라(웃음). 지금은 많이 알리고 많이 뛰는 게 먼저다. 첫날 직원들에게 세계 1등 비데회사가 되자고 했다. 10년이면 그 비전을 이룰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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