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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도발 초전 박살 낼 뒷심을 기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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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신두병
전 이탈리아 대사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 영토가 포격당한 처지에 있다. 우리는 그간의 대북한 정책이 연평도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사진 한 장으로 실패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제 내 머리 위에 언제 북한 장사포가 떨어질지 모르게 돼 있다. 180발 대 80발 반격으로 ‘자위권 발동’ ‘적극적 억제’ ‘선제타격론’까지 발언했던 것은 약 광고와 같이 돼 버렸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도 소용없다. 세계경제권 12위라는 것도 무의미해졌다. 정보기술(IT) 주도국이라는 것은 장사포 앞에 허상에 가깝다. 동해의 아름다운 모래사장에 설치돼 있는 녹색 페인트로 칠해진 철조망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1935년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할 때 당시 국제연맹은 침략자에게 경제적 제재 조치를 취했으나 일정 품목에 한한 것이었기 때문에 무솔리니에게 위협적인 것은 아니었다. 한편 영국과 프랑스는 에티오피아 영토의 3 분의 1을 무솔리니에게 양도하는 유화정책을 폈다. 그러나 결국 무솔리니는 에티오피아를 점령하고 말았다. 미약한 집단 응징책과 유화론은 히틀러, 일본의 패권주의를 초전에 막지 못해 결국 5000만여 명의 희생을 초래한 제2차 세계대전을 겪게 됐다.

 연평도 기습 포격과 무솔리니의 에티오피아 침략을 비교하면 침략자와의 협상이 가능하다는 유화정책은 허상임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다른 것은 정치·경제·군사 모든 면에서 세계의 제2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외교 담당 국무위원이 평양을 우선 방문하지 않고 서울을 방문해 적반하장식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반도 상황 악화 방지’를 주문하고 갔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제재 조치는 중국이라는 뒷문이 열려 있기 때문에 유엔 안보리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왜 한국은 공격을 받고서도 입 다물고 있으라는 압력을 받게 된 신세가 됐는지, 이는 총체적인 아마추어식 부실 외교의 결과다.

 북한은 한국의 분열된 국내 사정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안보는 정치 군인과 정치꾼들에 의해 정권 유지 도구로 악용됐고, 부자들은 형제간에 싸움하고 있고, 양극화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깊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는 확전의 두려움으로 제대로 반격하지 못할 것이라고 북한은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한국의 성장은 끝났다’는 특집기사를 냈다. 우리는 이제 다시 태어나야 된다는 경고를 받고 있다. 국제적인 브랜드 속의 헛치레에서, 우쭐대는 기분에서 벗어나 뒷심을 단단히 길러야 될 것이다. 유럽의 강대국 속에서 살아남고 있는 작은 나라들은 건들면 온 국민은 물론 온 세계가 일어나도록 항상 점검하는 게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칙의 나라이며, 인권을 무엇보다 존중하는 나라임을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한다. 뒷심 없는 정의는 무의미하며 허풍쟁이가 된다. 북한은 오로지 항공모함과 같은 힘에만 굴복할 줄 아는 테러집단인 만큼 오로지 초전 박살의 전략 구사만이 적절한 대응책이 될 것이란 점을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신두병 전 이탈리아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