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말 들어보라고, 박근혜가 아버지 박정희에게 라디오 건넸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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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봉두완씨는 정장에 넥타이를 맬 때도 빨간모자를 쓴다. 손녀가 “할아버지, 항상 쓰고 다니세요”라며 선물한 거다. 그 약속을 지키는 모습에서 ‘자유인 봉두완’이 읽힌다. [중앙북스 제공]

그의 방송은 1970년대를 풍미했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 아무도 목청을 높이지 못했다. 그러나 TBC-TV(동양방송)의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와 라디오방송 ‘뉴스전망대’는 달랐다. “민주주의 한다면서 헌법을 몇 번씩 뜯어고치면 어떡합니까? 그런데 바꿔서 하겠다는데 어떡합니까?”라며 군사정권의 폐부를 찔렀다. 당시 시청자와 청취자는 그의 방송을 들으며 통쾌함을 느꼈다. 심지어 박근혜씨는 ‘봉두완 방송’의 주파수를 맞춰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꼭 들으라”며 라디오를 건넸다고 한다.

 수위 높은 발언이 나간 뒤에는 청취자들이 내기를 했다. “봉두완이 잡혀간다” “아니다. 잡혀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렇게 돈을 걸 정도였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다음 방송에서 나오는지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올해 희수(喜壽·77)를 맞은 봉두완씨가 『너 어디 있느냐』(중앙북스)를 냈다. 제목이 상당히 종교적이다. 이유가 있다. 그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을 가까이서 지켜봤고, 경기도 의왕시 성 라자로 마을에서 40년째 한센인을 돕고 있는 가톨릭 신자다. 칠순 때는 나자로 마을의 한센인이 그를 위해 생일상을 차리기도 했다. 신문기자·논설위원·방송사 앵커맨·국회의원·대한적십자사 부총재·천주교 한민족 돕기 회장 등을 역임하며 세상의 파고를 넘었던 그는 “내 삶의 고비 때마다 물음이 날아왔다. ‘너 어디 있느냐?’ 그건 하느님의 물음이었다”고 말했다. 26일 그를 만났다. 그리고 봉두완의 방송부터 봉두완의 종교까지 물었다.

 -‘너 어디 있느냐’. 그건 창세기 때 하느님이 아담에게 던졌던 물음이다. 왜 책 제목이 됐나.

 “삶의 고비를 맞을 때마다 예수님이 거기에 서 계시더라. 1980년 11월30일이었다. 방송통폐합으로 TBC가 사라질 참이었다. 그날이 마지막 방송일이었다. 지금도 마지막 방송 멘트를 기억한다. ‘TBC 뉴스전망대에서 바라본 오늘의 세계, 오늘은 TBC가 죽는 날. 저는 더 이상 더듬지 않을 겁니다.’ 그날은 저를 포함한 모든 스태프가 울면서 방송했다. 그건 제 삶의 큰 시련이었다.” 기자 출신인 그의 약간 더듬는 듯한 말투는 ‘봉두완표 개성’이기도 했다.

 -재치와 용기가 있는 방송이었다. 그게 왜 가능했나.

 “저는 가톨릭 신자다.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는 게 아니다. 하느님의 눈치를 볼 뿐이다. 돌아보면 그때 소신과 자신감은 거기서 나왔다.”

 그는 졸지에 직장을 잃었다. 우여곡절 끝에 정계로 갔다. 당시 야당의 텃밭이던 서울의 마포·용산에 여당 후보로 출마, 전국 최다득표를 했다. “TBC가 통폐합된 지 불과 넉 달 만에 선거를 치렀다. 유세장에서 ‘내가 뺏긴 마이크를 달라. 국회의원이란 마이크가 있는데 그걸 내게 달라’고 호소했다. 당시 저에 대한 굉장한 지지는 ‘TBC와 봉두완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었다고 본다.” 여당 국회의원이 된 그는 대통령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봉씨는 책에서 71년 성탄 전야 미사의 TV생중계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한 일, 육영수 여사의 주선으로 대통령과 추기경이 기차에서 만난 일, 당시 둘이 나누었던 대화, 박 대통령의 서거 때 김 추기경이 올렸던 기도문 등 시대의 뒷얘기를 들려준다. 봉씨는 자신의 책을 일선 군부대에도 보낼 계획이다. 젊은이들에게 그가 살아온 세상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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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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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現] 천주교한민족돕기회 회장

19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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