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백일장] 11월 수상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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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장원

낙타  최슬기

황사가 사구를 쌓는 뜨거운 도시하늘

길마다 낙타들의 발자국이 빼곡해도

아버지, 오아시스는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모래처럼 서걱대는 사람들의 말소리

목마름은 또 하나의 등짐이 되었고

달빛은 환할 것 없는 뒷모습을 품고 있다

◆장원 약력

1994년 광주 출생

광주국제고 2학년 재학 중

이달의 심사평

요즘 아버지의 삶, 간명하게 그린 열여섯 소녀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인 아버지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11월 장원작 ‘낙타’를 읽으며 우리 시대 아버지를 떠올려 본다. [중앙포토]

마지막 달력 앞, 조바심이 앞서는 때다. 이맘때면 도지는 신춘문예 병으로 몸살을 앓는 길목이기도 하다. 시조의 한판을 겨루는 신인문학상을 코앞에 둔 까닭에 11월 심사에는 더 신중한 마음으로 임하게 된다.

 ‘낙타’를 이 달의 장원으로 뽑는다. ‘목마름이 또 하나의 등짐이 되’는 오늘날의 아버지 삶을 간명하게 그려냈다. ‘황사가 사구를 쌓는 도시하늘’ 아래 ‘신기루처럼 흩어’지더라도 ‘오아시스’를 찾는 삶,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품는 달빛을 읽는 시선에 신뢰가 간다. 너무 흔한 이미지가 된 ‘낙타’ 때문에 망설였지만, 현실 인식을 높이 샀다.

 차상 ‘물림에 대하여’는 시조 가락을 잘 부리는 미덕을 갖추고 있다. 다른 작품에서도 안정적인 호흡과 시상의 조화를 눈여겨봤지만, 회고 정서가 많은 탓에 밀렸다. 새로운 시각과 표현을 더 고민하면 더 여문 시조를 쓸 것으로 보인다.

차하 ‘유혹, 펄럭이다’는 현실적 감각의 가능성을 더 평가했다. 세태를 잡아내 시조 형식에 잘 다듬어 앉힌다는 점에서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비유나 표현의 새로움을 더 파고든다면 더 심도 있는 풍자를 구사할 수 있겠다. 이 밖에 내려놓기 아쉬웠던 응모자는 심미소·조미란·원재근·이형남·고지연 등이다.

 이 지면은 시조를 사랑하는 응모자들의 즐거운 한마당이다. 열심히 시조를 찾고, 공들여 써 보내고, 가슴 떨며 기다리고, 웃고 한숨 쉬는 과정 속에서 판이 한층 풍성해진다. 그리고 그런 되풀이 속에서 어느새 시인으로 거듭나는 응모자도 있다. 무릇 도약은 도전으로 얻는 법, 시조를 다시 다잡고 길게 겨뤄보기를 바란다. 자신이 바라는 시조미학은 물론 다른 갱신을 위해서도 새로운 길에 다시 뜨겁게 설 것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정수자·이종문>

차상

울림에 대하여      장옥경

저물녘, 어머니가 두들기던 다듬이 소리

뒤란에 잠긴 우물 부시시 깨어나고

풀잎에 웅크렸던 별, 후두둑 떨어진다

둥글고 적막한 방, 가난한 순결 위에

텅 비인 악보마다 쏟아지던 빗방울

음표들 흔들거린다 느낌표로 곧추서서

흩어진 마음결도 다잡으면 팽팽할까

풀 먹인 네 귀퉁이 빳빳이 깃 세우면

엉키고 꾸불꾸불한 길 반듯하게 펴진다

가슴에 일렁이던 잔잔한 파문 하나

창호지 단풍 문양 가늘게 떨려올 때

다도해 번져나간다 돌비늘 촉 햇살 되어

차하

유혹, 펄럭이다      최미향

꼬깃꼬깃 쌈짓돈 풀어

처음 산 뾰족 구두

노점상표 꽃남방으로

봄날을 되살리고

핸드백 번쩍거려도 신상 짝퉁 루이비똥

할인쿠폰 하나 둘 모아

다녀온 환갑여행

떠나는 마지막 길도

유혹하는 저 한마디

[파격가, 장례비용 50% 할인] 생글거리는 현수막



◆응모 안내=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 달 말 발표합니다. 늦게 도착한 원고는 다음 달에 심사합니다. 응모 편수는 제한이 없습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겐 중앙시조백일장 연말장원전 응모 자격을 줍니다. 12월엔 백일장이 없습니다. 서울 중구 순화동 7번지 중앙일보 편집국 문화부 중앙 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10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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