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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수산물 생산지 경매로 가격 안정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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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김종규
농수산물전자도매법인 대표

얼마 전의 배추 파동은 소비자들에게 충격을 던졌다. 매일 식탁에 오르는 배추값이 한 포기에 1만원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정작 배추 농가의 수입은 매우 적다는 내용이 보도되면서 국민은 또 한번 놀랐다. 산지에선 한 포기에 1500원 정도인 배추가 소비자에겐 1만원에 팔리는 현실. 이번 배추 파동은 ‘소비지 경매’라는 농수산물 유통구조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소비지 경매’란 전국의 생산지에서 생산된 농수산물을 소비지 인근 도매시장에서 경매를 통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는 1970년대의 사회적인 인프라를 고려하여 법정화된 제도다.

 하지만 농수산물이 중간상인과 도매시장, 중도매인, 소매상을 거치는 각각의 단계에서 마진이 붙기 때문에 자연히 소비자의 손에 들어갈 땐 생산지 가격보다 훨씬 비싸진다. 세계에서 가장 발전됐다는 우리나라 정보기술(IT) 인프라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생산자가 여러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소매상인에게 농산물을 팔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것도 굳이 도시에 있는 도매시장으로 농산물을 싣고 올 필요 없이 말이다. 농사지은 곳에서 바로 농산물 등급이 정해지고 전국의 소매상들이 경쟁하여 구매할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생산지 경매’ 시스템이다. 생산지 경매를 위해서는 온라인 시스템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물류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IT와 물류 인프라의 수준을 생각하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농산물 품질을 평가할 수 있는 회사(전문가)가 현지에 내려가 농산물의 등급을 매겨 출하 정보를 올려 놓으면 소매상인들이 인터넷을 통해 구매하는 방식이다. 이후 보다 집약된 물류 시스템을 통해 농산물을 즉시 배송받으면 된다.

 이런 생산지 경매 시스템이 정착한다면 우선 생산자는 소득이 늘고, 소비자는 보다 싸게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 원가에 붙는 낭비적 요소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국의 수퍼마켓과 재래시장 같은 곳의 소상인들도 농산물의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이는 기업형 수퍼마켓(SSM)에 대응하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지역 경제가 활성화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의 일부가 생산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또 생산자가 직접 구매자들과 경매를 통해 접촉함으로써 어떤 상품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보다 정선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더해 제도적인 보호 속에서 안주해온 기존 도매시장이 분발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 이는 서비스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회사는 2006년에 농수산물 산지 전자도매 시스템을 구축하고 BM특허를 취득했다. 하지만 전국적인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큰 숙제였다. 정부도 120억원을 들여 이와 비슷한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정부가 다음 달까지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대책을 세운다고 들었다. 그동안 국내 농산물 유통구조에는 공공기관의 개입이 지나치게 심했다. 정부 주도하에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 지원하기보다 친시장적인 방식으로 해결되길 바란다.

김종규 농수산물전자도매법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