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위로 받아야 하는 소년이죠, 힙합 듣고 낯선 곳을 달리는 그 아이처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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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삶이 자신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발견한 열두 살 소녀의 눈으로 기성 세계를 풍자한 장편 『새의 선물』의 작가 은희경(51·사진)씨. 그가 5년 만에 새 장편 『소년을 위로해줘』(문학동네)를 냈다. 공교롭게도 열일곱 살 소년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올 상반기 인터넷에 연재했고, 이번에 책으로 묶었다.

 은씨를 일약 스타 작가 반열에 올린 데뷔작 『새의 선물』과 15년 격차를 두고 세상에 나온 새 장편. 은씨에게는 단순하게 주인공이 어리다는 공통점 이상으로 각별한 의미가 있는 듯했다. 24일 기자간담회 자리. 은씨는 대뜸 “그 동안 살면서 진 빚을 갚은 느낌”이라고 밝혔다. 반드시 썼어야 했다는 것이다.

 은씨는 『새의 선물』에 빗대 새 소설을 설명했다. “쓰면서 자꾸 『새의 선물』과 비교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두 작품을 비교했다.

 “『새의 선물』이 세상을 강하게 바라보기 위해 주입하는 독 같은 것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일종의 근육이완제 같은 거다. 보다 유연하게 세상을 보기 위한.”

 그런 목적을 염두에 두다 보니 글쓰기도 달라졌다고 한다. 은씨는 “지금까지 구성의 치밀함이나 기승전결의 배분, 깔끔한 문장 등 정격(正格)소설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면 이번 소설에서는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소년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그리려다 보니 언어 역시 아이들 것을 쓰게 됐다.

 소설을 쓴 계기 역시 예사롭지 않다. 비장하기까지 하다. 몇 해 전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은씨는 여덟 시간을 울었다고 한다. 30대 중반, 뻔하고 구차스런 인생에 회의가 생겨 모든 것을 접고 소설 쓰기에 뛰어들었는데 어느 날 돌아보니 또다시 경직된 기성세대가 돼 있었고, 그게 가슴 아파서였다.

 이런 실존적인 이유 때문에 써야만 했던 소설. 어떤 작품일까? 소설은 주인공 연우가 또래의 소년들이 느낄만한 고민을 힙합 뮤직을 듣고 달리기를 하며 극복하는 내용이다. 자신감이 부족해 튀기보다 어딘가 섞여 있어야 편한 연우가 우여곡절 끝에 못마땅한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게 되는 성장소설 구조다.

 은씨는 소설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틈만 나면 힙합 음악을 들었다. 또 달리기도 이전보다 더 열심히 했다. 하프마라톤을 몇 차례 완주할 정도였다. 혹시 청소년 소설인 것 아닐까? 의심스러운 독자들은 『새의 선물』의 교훈을 잊은 게다. 우리 안에 누구나 열두 살에 성장을 멈춘 소년이 들어 있다는.

 은씨는 말했다. “우리는 모두 위로 받아야 하는 소년들이다. 세계라는 낯선 우주 안을 떠돌아 다녀야 하는.”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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