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늑장 지급 없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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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경기 안산에 사는 이모(41)씨는 2007년 10월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G보험사의 보험상품을 계약했다. 올 6월 이씨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 실려갔고 심장수술을 받았다. 그 후 보험금을 받기 위해 서류를 갖춰 보험사에 냈지만 2개월이 지나도록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았다. 이 보험사는 이씨가 소비자원에 민원을 접수한 뒤에야 보험금 2600만원을 지급했다.

 이씨만 이런 경험을 겪은 게 아니다. 지난해 소비자원에 접수된 보험 관련 피해구제 사건 767건 가운데 368건(48.0%)이 보험금 지급 관련 민원이었다. 보험상품에 가입할 때는 한없이 친절하지만 막상 보험금을 받아야 할 일이 터지면 문턱이 높기만 한 것이다. 이런 보험사의 잘못된 관행에 공정거래위원회가 메스를 가했다.

 공정위는 보험금 지급시기를 보험사가 임의로 지정할 수 있게 한 37개 생명·손해보험사의 약관 조항이 불공정하다고 보고, 해당 보험사에 자진해 시정하도록 명령했다. 또 각 보험사가 따르고 있는 금융감독원의 보험표준약관 6종도 이에 맞춰 시정해줄 것을 금융위원회에 요청했다.

 현행 약관은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사유를 조사한다는 이유로 3일 이내에 보험금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 보험금 지급예정일을 고객에게 서면으로 통지하도록만 돼있다. 언제까지 보험금을 지급하고, 이런 정보를 언제까지 고객에게 통지해야 하는지가 명시돼 있지 않은 것이다. 공정위의 이순미 약관심사과장은 “이는 보험금을 지체없이 지급하여야 한다는 상법 제658조의 취지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약관 탓에 보험사는 보험금을 빨리 지급해야 할 부담이 없었다. 실제로 2009년 한 보험사가 고객에게 3개월 이상 지난 뒤 보험금을 지급한 경우는 600건이며, 이 중 6개월을 초과해 보험금을 지급한 경우가 64건, 1년 뒤에야 보험금을 준 사례도 1건이 있었다.

 보험금을 늦게 지급할 때 고객은 지체 보상청구권으로 대항할 수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또 보험사가 추가 조사를 이유로 보험금 청구 이후 3영업일 이내에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보험금의 50%를 가지급 보험금으로 청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막연히 보험사의 처분만을 기다려야 하는 고객은 이런 사실도 잘 모르고, 보험사도 가지급금 지급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순미 과장은 “내년에는 농협 등 협동조합공제 상품과 버스조합 등 자동차공제 상품, 우체국 보험의 약관으로 조사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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