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는 이학수 … 새로 맡은 김순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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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꼼꼼한 지장(智將) vs 온화한 덕장(德將).

 재계 1위인 삼성그룹 컨트롤 타워의 신구 수장은 사뭇 다른 스타일이다. 이학수 전 전략기획실장은 여러 차례 위기 속에 그룹을 이끈 재무통답게 치밀하고 깐깐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신설 그룹 조직의 책임자로 임명된 김순택 삼성전자 신사업추진단장(부회장)은 삼성SDI의 최고경영자(CEO)를 10년간 지낸 삼성의 대표적 장수 CEO다. 온화하고 소통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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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두 사람 모두 삼성의 고도성장기를 주도했던 회장 비서실 출신으로 공통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비서실에서 삼성의 창업주인 고(故) 호암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을 오랫동안 보좌한 두 사람은 삼성에 대한 로열티가 강한 것으로 정평 나 있다. 삼성의 철학과 역사, 삼성의 경영방식에 대한 이해도가 그룹의 어느 누구보다 정통하다는 평가다. 또 두 사람 모두 삼성그룹 초기, 핵심 계열사의 경리과장(이 전 실장은 제일모직, 김 부회장은 제일합섬)을 지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행로는 비서실 근무 이후 상당히 달라졌다. 비서실에서 재무를 담당했던 이 전 실장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그룹 차원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이끌었다. 당시 삼성자동차 문제를 해결하면서 그룹의 핵심 역량을 지켜냈고, 이는 이후 삼성의 비약적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그는 11년(1997~2008)간 구조조정본부장-전략기획실장을 맡아 이건희 회장이 제시한 비전을 실행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가 이끌었던 구조본과 전략기획실은 각 계열사의 업무를 관리·감독했다.

 반면 김 부회장은 비서실 생활의 상당 부분을 감사팀에서 보냈다. 이때 경험을 통해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다졌다. 삼성SDI 사장은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었다. 쇠락기에 접어들던 브라운관 회사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2차전지를 생산하는 미래형 에너지기업으로 성공적으로 변신시켰다. 앞으로 새 변화를 예측해 미래 먹을거리를 발굴하는 데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김 부회장은 CEO 시절 직원들과 고락을 같이하면서 소통을 실천에 옮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SDI 관계자는 “김 부회장은 일에 대해서는 냉정하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정으로 대하는 스타일이어서 덕장으로 불린다”며 “해외 출장 중에도 경사를 맞은 직원에게 현지에서 축하카드를 보내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계열사를 관리·감독하기보다는 대화를 통해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리더십 차이는 시대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이 전 실장의 시대는 외환위기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 상황을 극복해야 했고, 이후 글로벌 1등 도약을 위해 그룹의 전 계열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시기였다. 김 부회장은 신사업을 발굴해 미래 포석을 놓는 과제를 안고 있다. 10여 년간 삼성 컨트롤 타워를 이끌었던 이 전 실장과 새롭게 컨트롤 타워를 책임진 김 부회장의 차이를 음미해 보면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이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상렬·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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