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대, 잉카 유물 4000여 점 페루에 돌려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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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미국 예일대가 고대 잉카시대 유물 4000여 점을 페루에 반환키로 했다. 사진은 이번에 반환될 예일대 소장 유물로 왼쪽부터 장식용 청동검, 액체를 담던 병, 도자기, 제례의식용 컵.

페루 정부와 유물 반환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미국 예일대가 마추픽추 유물 4000여 점을 반환키로 결정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외신들은 알란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의 발표를 인용해 페루를 방문한 에르네스토 세디요(전 멕시코 대통령) 예일대 교수 등이 페루 당국자들과 협의해 이같이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번에 반환되는 유물은 예일대 교수였던 하이람 빙엄 등이 1911~15년 잉카 유적지를 발굴하면서 미국으로 가져간 것으로 청동검을 비롯해 장신구·보석·도자기·금속제품·직물·유골 등이 포함됐다. 공식적인 반환은 유물 목록 작성을 완료한 뒤 내년 초에 이뤄질 예정이다.

 ◆페루·예일대 극적으로 합의=페루 유물이 반환되기까지 양측은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 페루 정부는 그동안 예일대가 갖고 있는 유물의 소유권이 자국에 있다며 신속한 반환을 요구해 왔다. 2007년 양측은 협의를 통해 페루의 소유권을 인정했지만 반환 유물 대상을 놓고 다시 맞섰다. 결국 페루 정부는 2008년 미국 법원에 예일대를 상대로 유물 반환과 함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까지 제기했다. 가르시아 대통령은 예일대를 설득하기 위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도움을 청하는 서한을 보내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예일대 측은 합의 직후 “페루의 풍요로운 역사와 문화유산을 존중하고 학계와 일반인들이 이들 유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예일대의 바람”이라고 밝혔다.

 ◆잇따르는 유물 반환=최근 들어 페루처럼 문화재를 약탈당한 나라들의 유물 반환 노력이 구체화되고 있다. 올 4월에는 이집트 카이로에 한국을 비롯해 그리스·중국·인도 등 식민 지배를 겪었던 20여 개국이 모였다. 유물 반환을 위한 국제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참가국들은 회의에서 일본·영국·프랑스·독일 등을 상대로 문화재 반환을 위해 공동 대응키로 합의했다.

 이 같은 노력은 차츰 결실을 맺고 있다.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이달 초 이집트에 3000년 전 유물 19점을 돌려주기로 했다. 이 유물들은 투탕카멘 무덤에서 나온 것들로 손가락 크기만 한 스핑크스 동상과 팔찌 등 진귀한 문화재들을 포함하고 있다.

 지난 4월 스위스는 이집트가 약탈당한 유물 반환에 적극 협력한다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스위스가 도난 유물 밀수의 주요 통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영국은 3월 이집트에 석기시대 유물 등 2만5000점을 반환했다. 런던대가 소장하고 있던 반환 유물 중에는 20만 년 전 돌도끼를 비롯해 도공의 지문이 남아 있는 기원전 7세기 때의 도자기 등도 포함돼 있다.

 이런 움직임은 한국과 프랑스 간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상에도 긍정적이다. 프랑스가 사실상 반환을 결정했고 구체적인 반환 절차를 논의하기 위한 양국 실무자 협의가 이번 주 시작된다.

 한편 각국의 문화재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도 강화되고 있다. 이집트는 올 초 고대 유물을 불법 밀반출하는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이집트 의회는 유물을 해외로 빼돌리다 적발되면 징역 15년과 함께 벌금 2억1000만원을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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