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제 살’ 먼저 도려내고 정·재계 수사에 힘 쏟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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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10월 6일자 1면.

16일 오후 김준규 검찰총장이 이른바 ‘그랜저 검사’ 의혹에 대한 재수사를 지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에서는 “또다시 내부 수사냐”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스폰서 검사’ 의혹 특검이 끝난 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 내부의 비위 의혹을 밝혀내야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 내 특검’으로 불리는 특임검사가 재수사를 맡게 됨에 따라 파장이 예상 외로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 총장이 이처럼 ‘특임검사의 재수사’라는 강수를 둔 데 대해 대검 관계자는 “남은 의혹이 있다면 규명해야 한다는 원칙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의 정·재계 수사에 힘을 싣기 위해 걸림돌을 없애는 차원”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화·태광·C&그룹 등 대기업에 이어 청목회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자 정치권에서는 “검찰이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사건 등 내부 비위엔 관대하고 외부로만 칼을 휘두른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이에 따라 검찰이 사정의 속도를 높이려면 내부 비리를 과감하게 도려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재수사의 초점은 일단 이번 사건의 주요 인물인 정모 전 부장검사 쪽으로 향하게 되겠지만 현직 검사들에게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 전 부장검사의 부탁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사건 담당 검사에 대한 조사는 물론이고, 관련 고소 사건을 무혐의 처분한 서울중앙지검의 판단이 적절했는지도 조사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랜저 검사’ 의혹은=2008년 당시 서울중앙지검에 근무하던 정 전 부장검사가 자신과 알고 지내던 건설사 대표 김모씨 측이 투자자 배모씨 등 4명을 배임죄로 고소하자 이 사건을 맡은 후배 검사에게 잘 처리해달라고 부탁했다는 의혹에서 비롯됐다. 검찰은 배씨 등을 기소했으나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이후 정 전 부장검사가 김씨 측에서 송금해준 돈으로 그랜저 승용차를 구입한 것으로 드러나자 배씨 등은 정 전 부장검사를 알선뇌물수수 혐의로 고소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7월 “적극적인 알선이나 청탁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전진배 기자

◆특임검사=지난 8월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검사의 비위 관련 사건을 관할 검찰청에 맡기지 않고 별도로 수사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특임검사는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지 않고 수사 결과만 보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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