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구제금융 신청 임박” … 재정적자·국가부채 한계 상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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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더블린의 중심가에 있는 한 상점이 ‘너무 비싼 임대료 탓에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건물 외벽에 내걸었다. 아일랜드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 여파로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란 보도가 잇따르면서 국채금리가 급등하는 등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더블린 AP=연합뉴스]

아일랜드가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유럽안정기금에 곧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라고 유럽 언론들이 잇따라 보도했다. 아일랜드 국채 가격이 급락하는 등 금융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영국 BBC는 13일(현지시간) 아일랜드 정부가 유럽연합(EU)의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사전 협의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BBC는 “구제금융을 받을지 말지를 논의하는 수준이 아니라, 언제 공식적으로 구제금융을 신청할지 시기를 정하는 일만 남아 있다”고 전했다. 구제금융 신청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블룸버그도 이날 익명을 원한 EU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전날 유럽중앙은행(ECB)의 전화회의(콘퍼런스 콜)에서 아일랜드가 곧바로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아일랜드 국영 라디오 방송인 RTE도 이날 “아일랜드가 유럽안정기금에서 600억 유로를 지원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아일랜드 정부와 EU는 이 같은 보도를 부인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브라이언 레니한 재무장관은 RTE와의 인터뷰에서 “내년 중반까지 원리금을 갚을 자금이 충분하다”며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란 얘기는) 말이 안 된다”고 일축했다. 또 AFP에 따르면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의장인 장-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도 “아일랜드가 지원을 요청한 바 없다”고 확인했다.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 국채는 이자율이 치솟고 있다. 위험하다고 여겨 사는 사람이 없기에 자꾸 이자를 더 얹어줘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아일랜드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지난 9일 7.939%에서 10일 8.636%로 하루 만에 0.697%포인트 뛰더니, 11일에는 8.896%까지 치솟았다. 불과 100일 전인 8월 초(4.973%)에 비해 4%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국가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11일 5.95%포인트로 올랐다. 0.7~0.8%포인트를 오가는 한국의 7~8배 수준이다. 유로화 가치도 1.36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아일랜드의 문제는 은행 부실에서 비롯됐다. 2000년대 초반에도 경제가 두 자릿수 성장을 하는 등 선진국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고속 성장을 하면서 아일랜드 은행들이 마구잡이 대출을 한 게 화근이었다. 금융위기가 터지자 아일랜드 은행들은 대규모 부실을 떠안게 됐고, 일부는 견디다 못해 국유화됐다.

 이 과정에서 아일랜드 정부는 은행에 457억 유로를 구제금융으로 쏟아부었다. 그러면서 막대한 재정적자가 생겼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14%에 달했고, 올해는 32%에 이를 것이란 추산이 나오고 있다. 그리스(9.3%)와도 비교가 안 되는 규모다. 그래서 아일랜드가 유럽안정기금에 손을 내밀 것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이다. 아일랜드에 대해서는 지난 9월에도 한 차례 위기론이 퍼진 바 있다. ▶관련기사 보기

 아일랜드는 헤지펀드들이 많이 이용하는 조세 피난처다. 따라서 아일랜드가 위기에 빠지면 여기를 경유해 한국에 들어왔던 자금이 많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투자증권 강현철 투자전략팀장은 “국가 신용도나 기업 실적에는 거의 영향이 없겠지만, 헤지펀드 자금 유출로 주식·외환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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