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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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호 29면

12일 막을 내린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에는 잘사는 나라의 지도자만 참석한 게 아니다. 1인당 소득이 360달러인 에티오피아의 멜레스 제나위 총리도 함께했다. G20 회원국이 아니지만 아프리카 대륙의 이익을 대표해서 왔다.

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지금은 비록 가난하지만 에티오피아는 오랫동안 ‘검은 대륙의 자존심’이었다. 30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사이에 태어난 자손이 다스렸다고 한다. 옛 이름인 아비시니아는 구약성서에도 나온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일리아드 오디세이’에도 등장한다.
에티오피아는 외세 침탈에 맞서 국권을 굳게 지켜 냈다. 16세기에 무슬림이 14년간, 20세기엔 파시스트 이탈리아가 1936년부터 5년간 점령했을 뿐이다. 1895년 이탈리아군이 침략했으나 이듬해 3월 아두와 전투에서 물리쳤다. 19세기 백인 식민주의자를 힘으로 몰아낸 유일한 아프리카 국가다.

문화적 자부심도 무척 강하다.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고유 문자를 쓰고 있다. 독자 기독교 문화(에티오피아 정교)도 발전시켰다. 커피 교역 등으로 경제적으로도 윤택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1인당 소득 1000달러’를 노래 불렀지만, 에티오피아는 이미 60년대 3000달러에 이르렀다. 에티오피아가 6·25전쟁 때 3개 대대 6037명을 파병해 253회의 전투를 벌인 것도 어느 정도 국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6·25 참전으로 전사 121명, 부상 536명의 사상자를 냈다.

문제는 공산주의자 그룹 데르그(고유 언어인 기즈어로 위원회라는 뜻)가 74년 쿠데타를 일으켜 마지막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를 몰아내고 집권하면서다. 지도자인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이 공산권에서 맨 처음 배운 것은 학살이었다. 반대파 수만 명을 처형했다. 그 다음이 모든 토지와 생산수단의 국유화였다. 경제개발 10개년 계획을 세워 84, 85회계연도부터 93, 94회계연도까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3.6%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그 10년간 소득은 뒷걸음질쳤다.

공산정권의 미숙한 관리와 부패, 잔혹한 통치 때문에 나라는 엉망이 됐다. 거기에 80년대 가뭄까지 겹치면서 굶주린 국민은 경제난민이 돼 이웃 나라의 캠프를 전전했다. 남은 국민은 서방 구호단체의 원조로 연명했다.

이번에 서울에 온 멜레스 총리는 마르크스주의자로 출발했으나 90년대 초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고 집권한 인물이다. 그는 “한국에서 희망을 찾는다”며 성장 비결을 수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경제 개발부터 사회제도 그리고 민주화에 이르는 일련의 노하우를 말한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변한 한국이 아프리카를 비롯한 개도국에 줄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선물일 것이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집단의지 역시 필요할 것이다. 우리 국민이 피땀으로 현대사를 헤치고 나오면서 깨달은 바로 그 결론 말이다. 가까운 북쪽의 ‘우
리 민족’에게도 이를 나눠 줄 수 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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