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충전해 닷새 가는 30달러짜리 휴대폰 … 가난한 사람 위한 신기술 따로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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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세상을 바꾸는 생각들’을 주제로 열린 제2회 테크플러스 포럼이 10일 이틀간 일정의 막을 내렸다. 모두 8000명이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을 찾았다. 지식콘서트를 표방한 이 포럼엔 19명의 국내외 각계 권위자들이 참석해 기술과 창조·융합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를 각각 20분 안에 풀어냈다. 둘째 날 행사에 참여한 3000여 명의 관객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연사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행사 후 열린 가수 김장훈·클래지콰이 공연이 시작되자 수백 명의 참가자가 단상 앞까지 나가 호응하며 흥겨운 분위기였다. 관객들은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행사 내용을 중계하기도 했다.

마지막 날 행사에는 세계적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 예술사학자이자 미디어 연구가 올리버 그라우, ‘비디오콘’ 김광로 대표, ‘아트센터 나비’ 노소영 관장, 가상현실의 개척자 재런 레이니어, KAIST 정재승 교수, 환경디자인연구소 김현선 대표의 강연이 이어졌다. 전문 분야는 모두 달랐지만 강연자들이 대체로 주목한 건 디지털 기술이 인류의 미래를 좀 더 인간답게 바꿔가리라는 낙관적 전망이었다. 이런 인식을 토대로 강연자들은 10년, 20년 뒤 지금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당장 무엇을 할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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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리 강연에서 김용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은 “테크플러스는 도전하는 포럼”이라며 “기술과 경제·문화·사회·철학·심리학·예술의 결합을 통해 융합과 개방·창조의 패러다임으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데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이어 285명의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테크플러스 포럼’이 지난 1년간 103회의 회의 끝에 도출해낸 ‘테크플러스 국민 실천 10대 제안’을 공개했다. 김 원장은 “미래 산업 방향의 큰 줄기는 융합, 오픈 이노베이션, 녹색”이라며 “융합형 인재 발굴 프로젝트를 통해 미래 문화 트렌드를 이끌 리더를 키우고, 산업 융합을 통해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다음은 주요 강연 내용.

재런 레이니어(위), 김광로 대표, 정재승 교수, 노소영 관장(아래 왼쪽부터)

김광로(인도 ‘비디오콘’ 대표)

 신(新)경제, 구(舊)경제라는 말이 있다. 인류의 3분의 1은 가난한 구경제의 영역에, 또 다른 3분의 1은 부유한 신경제에 속해 있다. 신기술이란 대개 상위 3분의 1인 신경제 인구를 위한 것이다. 애플 아이폰·아이패드 등이 모두 신경제다. 하지만 ‘바닥’의 3분의 1에 중요한 신기술은 따로 있다. 사실 이들을 상대하는 비즈니스가 앞으로 30년을 좌우할 것이다. 인도와 중국 인구의 70%가 여기 속한다. 지구상에는 은행계좌조차 없는 인구가 훨씬 많다. 인도에서 요즘 뜨는 상품은 가격과 에너지 소비 모두 일반 제품 3분의 1 정도인 저가 냉장고다. 한 번 충전하면 닷새를 버티는 30달러짜리 휴대전화도 인기다. 인도 시골 마을 중엔 아직도 하루 2~3시간밖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발전기로 가는 간이 자동차도 있다. 한국 기업들이 이런 쪽에 관심을 많이 가지길 바란다. 특히 중소기업들엔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될 것이다.

정재승(KAIST 바이오·뇌공학과 교수)

 ‘마음’이 있는 곳은 심장이 아니라 뇌다. 미국 에머리대학 의과대에서는 몸이 마비된 환자의 뇌파를 읽어 의사소통하는 기술을 발명했다. 뇌 속에 전극을 꽂아, 뇌세포들이 주고받는 전기신호를 잡아냄으로써 환자의 ‘마음’을 읽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전투기 조종사가 앞에 물체가 있다는 걸 인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0.3초, 손을 움직여 조정간을 움직이는 데 드는 시간은 0.7초다. 모두 1초인데, 이 정도면 전투기는 1000m를 날아간다. 당연히 충돌사고가 난다. 만일 전투기가 뇌의 신호를 읽을 수 있다면 어떨까. 0.7초를 절약해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우리 연구실에서도 안경으로 뇌파를 읽는 실험을 했다. 흥미로운 것을 보면 안경에 부착된 카메라가 그 장면을 자동으로 찍어 스마트폰으로 전송한다. 그때그때 생각과 경험을 앨범처럼 저장할 수 있는 것이다. 21세기엔 이렇듯 사람의 마음을 읽는 기계가 확산될 것이다. 그런 날이 와도 너무 놀라지 않도록, 그런 기계들을 인간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데 관심을 가질 때다.

노소영(‘아트센터 나비’ 관장)

 창의성은 돈이 흘러 넘친다고 생기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자원이 한정됐을 때 꼭 필요한 것을 조달하기 위해 창의적 방법을 찾아내는 경우가 많다. 기술이 기술을, 돈이 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가’를 고민하는 데서 새로운 것이 나온다. 요즘 ‘창조 산업’이란 말이 자주 나오는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어렵다. 지금까지 정부의 지원은 애니메이션·게임 등 특정 분야별로 이루어졌다. 지속적이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생태계다. 그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순수예술이 있다. 최하부에 출판과 유통이, 중간부에 각종 콘텐트 산업이 존재한다. 위아래가 든든해야 중간이 발전한다. 순수예술의 통찰력과 지식이 없으면 그 아랫부분은 발전하기 힘들다. 중요한 것은 피라미드처럼 서로를 지지하며 한몸으로 연결된 삼각형, 생태계 그 자체다. 각 부문 간 소통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재런 레이니어(‘가상현실’ 개척자)

 가상현실 개발은 실수에서 비롯됐다. 1980년 초 어느 날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는데 화면 속의 내 아바타(가상현실 속 분신) 손이 원래 모양보다 1m 이상 커져버렸다. 그전까진 ‘현실의 나와 똑같은’ 모습을 만들려고 애썼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인간 두뇌는 실제와 다른 어떤 모습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것이다. 내가 가상현실에서 물고기가 된다면 인간의 뇌는 곧바로 아득한 옛날 정말 바닷속을 헤엄쳐 다니던 그때로 돌아가 금방 적응할 것이다. 신경체계의 잠재력은 또 어떤가. 즉흥 피아노곡을 만드는 건 뇌가 아니라 손일 때가 많다. 이렇게 아직 다 드러나지 않은 인간의 잠재력을 탐험하다 보면 우리는 정말 많은 걸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간의 경험과 인지력을 일깨우는 기술 개발이 중요한 이유다.

이나리·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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