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비뚤어질테얏! ‘엄마의 꿈’ 외고 떨어진 모범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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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폴리스맨,
학교로 출동!
이명랑 지음
시공사
256쪽, 9000원

열 일곱 윤현상은 다섯 살 때부터 아침마다 영어 테이프를 따라 들으며 문장을 통째 암기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그런데 ‘모범생 같은 건 개에게나 던져 주겠다’고 결심한다. 엄마가 그토록 열망하던 외고에 떨어지고 한 해에 ‘인서울’에도 몇 못 간다는 K고에 입학한 날이다. 모범생 근성과 싸우느라 ‘간신히’ 지각하며 하루를 시작한 현상은 첫날부터 문제아로 찍히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전직 경찰 ‘폴리스맨’이 출동해 현상의 ‘정신 개조 훈련’에 돌입한다.

오리걸음 등의 특훈, 학교 청소 등의 벌칙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던 현상은 폴리스맨의 뒤를 쫓는다. 실체는 초라했다. 그는 산동네 판자촌에서 헤진 속옷을 입고 혼자 사는 노인이었다. 홀로 재개발을 반대하는 바람에 동네 사람들에게 ‘미친 영감’이라 손가락질 받고, 꽃뱀 할머니에게 돈만 뜯기곤 버림받아 앓아 눕는다. 현상은 외고 진학에 실패한 뒤 과외 그룹에서도 퇴출된 자신이 자꾸만 폴리스맨과 겹쳐 보인다. ‘실패자’라는 낙인이 떠올라서다.

 폴리스맨은 우여곡절 끝에 원래의 씩씩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경찰이 되고 싶어 시험을 일곱 번이나 떨어지고도 여덟 번째에 합격했다는 그를 보면서 현상은 자신을 되돌아본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던 이유가 엄마 꿈인지 자기 꿈인지 모를 외교관이 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는 걸, 영어 그 자체를 지독히 좋아했다는 걸 깨닫는다. 엄마의 욕심에 희생됐다고 푸념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까지 포기할 뻔 했던 것이다.

 소설가 이명랑씨는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인생을 소설로 쓰면 몇 권은 될 거라 말하는 이들의 불행한 삶에 의문을 가졌다고 말한다. 불행한 그들에게서 작가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단다. 바로 “네가 잘하는 걸 하면 되잖아?”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옆에 없었다는 것이다. 자녀에게 ‘성공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다그치는 부모가 먼저 읽으면서 ‘행복한 삶’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다. 떠밀려가듯 인생을 살아간다고 여기는 청소년에게 추천한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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