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새벽에 담 타고 이대 들어가 몰래 춤추던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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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헤이, 미스터 프로듀서
설도윤 지음
다할미디어
224쪽, 1만2000원

국내 뮤지컬 시장이 커지면서 뮤지컬 종사자들이 쓴 책도 제법 나오는 추세다. 그런 책들 그저 그랬다. 대개 비슷했다. 자기가 어떻게 뮤지컬을 하게 됐고, 얼마나 고생을 했으며, 어떤 고비를 겪었는데, 결국 극적으로 타개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꼭꼭 숨겨왔던 비하인드 스토리나 치부를 드러내진 않았고, 뛰어난 통찰력을 보이는 경우도 별로 없었다. 게다가 책의 제목이 ‘헤이, 미스터 프로듀서’라니. 이건 1998년 세계 4대 뮤지컬을 제작한 영국의 캐머런 매킨토시가 자신의 뮤지컬 인생 30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갈라쇼의 제목 아니던가. ‘자기가 무슨 매킨토시라도 된 줄 아나보지’란 선입견, 솔직히 있었다.

화려한 춤과 음악으로 무대 위에 ‘드라마’를 펼치는 뮤지컬 제작자에게도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삶이 있다.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는 자전 스토리를 담은 『헤이, 미스터 프로듀서』에서 싸움만하던 문제아가 어떻게 뮤지컬 프로듀서가 되었는지를 들려준다. [중앙포토]

 근데 글쓴이, 따지고 보면 ‘한국의 매킨토시’라고 불러도 과장이 아니다. 프로듀서 설도윤이라고 하면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뮤지컬 인사 1위 아니던가. 그는 그 유명한 ‘오페라의 유령’을 2001년 국내에 처음 들여와, 한국 뮤지컬 산업화의 첫장을 열었다. 한국에 현재와 같은 뮤지컬 열풍을 불러 일으킨 장본인이 설씨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 없을 게다.

 책은 바로 설씨의 자서전이라고 보면 된다. 패턴은 약간 뻔하다. 대신 사례가 세밀하고 생생한 덕에 쏠쏠히 읽힌다. 곱상한 외모의 그가 중학교때까지 허구헌날 싸움을 하고 다녔다는 건 처음 듣는 얘기다. 통금 시간이 끝나는 새벽에 몰래 담을 타고 이화여대로 들어가 하루 12시간씩 연습실에서 춤을 췄다는 스토리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9·11 사태가 나던 날 뉴욕에 있던 일이며, 태풍 매미로 ‘캣츠’ 텐트 극장이 망가져 졸지에 70억원을 날려버린 에피소드 등은 조금 찡했다. 겉보기엔 화려해도 뮤지컬 프로듀서란 사람들의 일상이 얼마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가슴을 졸여야 하는지 책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꼭 뮤지컬 팬이 아니라도 자신의 삶을 도전하고 개척하려는 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인듯 싶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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