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11명 동시다발 압수수색 … “국회 유린된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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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부지검이 청목회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국회의원 사무실을 5일 압수수색했다. 검찰 수사관들이 민주당 최규식 의원 사무실에서 압수한 자료를 가져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로비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5일 여야 국회의원 11명과 민주당 소속 이시종 충북지사 사무실 등을 전격 압수수색하자 정치권은 경악했다. 5일 오후 3시10분쯤. 국회 본회의장에서 사회 분야 대정부 질문을 듣고 있던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검찰의 압수수색 소식이 전달됐다. 그는 급히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 자리로 이동해 항의했고, 역시 소식을 처음 접한 김 원내대표는 몹시 당황해했다고 박 원내대표는 전했다.

 박 원내대표는 곧바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의 첫마디는 “11월 5일을 우리 국회가 정부에 의해 무참히 유린된 날로 규정한다”였다. 그는 “도대체 ‘대포폰’ 압수수색을 이렇게 번개처럼 했느냐. 라응찬, 천신일, 대통령 측근 수사를 이렇게 전광석화처럼 했느냐”며 언성을 높였다. 그는 이번 일을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 로비 의혹에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관련돼 있다고 주장한) 강기정 의원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이라며 “국회를 유린하는 행위가 계속되면 결코 (정국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국회는 다음 주부터 4대 강 공사 예산 등이 포함된 새해 예산안을 심의한다.

검찰이 광주시 민주당 강기정 의원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 없이 철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 집무실에서 충남 태안의 농민들을 면담하던 민주당 손학규 대표도 황급히 기자회견장을 찾았다. 그는 “가슴이 떨려서 말이 잘 안 나온다. 어처구니없어서 달려왔다”며 “국회를 불신의 대상으로 삼아 정치를 말살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979년 박정희 군사정권에서 야당의 김영삼 총재를 국회에서 제명했다. 그리고 유신 정권은 망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후 긴급 최고위원회와 의총을 열었다. 의총 후 민주당은 당내에 ‘검찰의 국회 탄압에 대한 대책위원회’를 구성키로 하고, 법조인 출신 조배숙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또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원내대표들과 8일 회담을 하고 검찰에 대한 공동대응을 모색키로 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도 이날 “분명히 과잉수사이자 검찰권력의 남용”이라며 “검찰은 무슨 정치적 동기를 가지고 있는가”라고 반발했다. 한나라당 김 원내대표는 박 원내대표와 헤어진 뒤 본회의장을 나와 소속 의원들과 대책을 논의했다. 원내대표실 앞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 원내대표는 “전에 없던 일이긴 한데…. 좀 신중히 봐야 하지 않겠나”라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잠시 후 정옥임 원내 공보부대표가 나서 입장을 발표했다. 그는 “의원의 후원회 계좌는 증거인멸을 할 수 없는 것인데도 압수수색을 한 것은 의원의 명예를 심각하게 손상되는 일”이라며 “검찰이 좀 더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 한나라당은 검찰 조사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압수수색을 당한 의원들은 강력 반발했다. 민주당 강기정 의원은 “국회에 대한 정치검찰의 입법권 침해엔 여야가 함께 나서야 한다”고 했다. 한나라당 친이계 신지호 의원은 “이렇게 마구잡이로 압수수색을 하면 국회의원의 명예는 어떻게 되느냐”고 반발했다.

 청와대는 검찰과의 교감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 핵심 관계자는 “서울 북부지검장이 검찰총장과만 상의하고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결정한 걸로 안다. 청와대와의 사전조율은 일절 없었다”며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강민석·남궁욱·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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