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 ‘멍청한 스케이터’ 덕에 딴 금메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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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알렉스 쿠야반테(오른쪽)가 만세를 부르는 사이에 추월하고 있는 이상철. [과르네 AFP=연합뉴스]

‘멍청한 스케이터’ 덕분에 인라인롤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역전 우승을 차지한 이상철(16·대구 경신고)이 뒤늦게 화제다.

 3일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멍청한 스케이터 동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이 동영상에는 콜롬비아 인라인롤러 선수 알렉스 쿠야반테가 결승선을 코앞에 두고 만세를 부르며 미리 우승 세리머니를 하다가 쏜살같이 뒤쫓아온 선수에게 우승을 내주는 장면이 담겨 있다.

역전 우승한 주인공이 바로 이상철이며, 이는 지난달 28일(한국시간) 콜롬비아 과르네에서 열린 2010 세계롤러스피드스케이팅선수권대회 남자 주니어 로드 제외(E) 2만m 경기 장면이다. 이상철은 31분54초782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네티즌의 배꼽을 잡게 한 코미디 같은 역전극 뒤에는 한국 선수단의 눈물 겨운 노력이 있었다. 이 대회에 한국 선수들을 지도한 용백수 감독은 “현장에서는 상철이가 2위 한 줄 알았다. 그런데 1위라니, 짜릿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비가 내려 트랙이 미끄러웠고, 콜롬비아가 홈 이점을 살리기 위해 구불구불한 코스를 만들어 놓아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상철이가 대견하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 선수단은 제 기량을 발휘할 상황이 아니었다. 참가 선수 대부분이 10월 9일까지 경남 전국체전에 참가했다가 사흘 뒤 콜롬비아로 출국했다. 체전에서 체력을 소모한 뒤 비행기를 갈아타며 과르네까지 이동하는 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설상가상으로 과르네는 해발고도 2150m의 고지대라 적응이 쉽지 않았다.

 대한인라인롤러연맹 관계자는 “콜롬비아는 인라인롤러 강국이다. 자국 내의 인기도 대단하고 실력도 세계적”이라고 설명했다. ‘멍청한 스케이터’ 쿠야반테가 자신의 실력을 과신할 만했고, 더구나 장거리인 2만m에서는 선수들이 지쳐 막판 스퍼트를 내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용 감독은 “단거리에서는 서구 선수들이 강하지만 장거리는 한국의 기술과 지구력이 세계적이다. 이번 역전 우승도 우리의 저력을 보여 준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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