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푸스를 이기는 비결, 나눔과 희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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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얼마 전 ‘행복 전도사’ 최윤희씨의 자살 소식에 많은 사람이 큰 충격을 받았다. 행복에 관해 20여 권의 책을 쓰고, 온갖 매스컴과 전국의 크고 작은 강단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설파하던 분,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제 궁극의 행복을 찾은 듯한 환한 웃음으로 희망의 씨앗을 나누어 주던 분이 자살로, 그것도 남편과의 동반 자살로 어느 작은 모텔에서 생을 마감했다니 마음이 헛헛해지는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를 좋아하고 그를 통해 삶의 의욕과 행복의 희망을 찾았던 사람이라면 깊은 배신감마저 느끼지 않았을까? 내게도 큰 충격이었다. 평소에 구구절절이 옳은 그의 말에 공감했고, 그의 넘치는 유머를 즐겼기 때문이다. 처음 자살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큰 실망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아간 원인이 다름아닌 루푸스였다는 것을 알고 나서, 정말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가 겪었다는 증상을 나도 똑같이 겪었기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자살이라니….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이 소식을 듣고 절망감에 사로잡혀 충동적으로 자살하는 환자들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내가 사실을 알았더라면 도움을 드릴 수도 있었을 텐데 싶어 안타깝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한 번이라도 ‘루푸스’를 검색했다면 ‘루푸스를 이기는 사람들(루이사)’이란 재단을 알 수도 있었겠는데, 이 분은 만성적인 이 병을 그냥 병원에 다니는 것만으로 나으려 했단 말인가?

그분은 자신이 전한 희망의 메시지를 부여잡고 현재의 고통을 이기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할 만큼 여유가 없었을 수 있고, 바로 그 생각 때문에 더 괴로워서 병세가 더 나빠졌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생의 덫에 갇혀 버린다. 완전히 갇힐 때까지 잘 깨닫지도 못하고, 갇히고 나면 스스로 빠져 나오기란 너무 어렵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며칠 동안 나는 여러 언론사들의 문의에 시달렸다. ‘루푸스란 어떤 병인가요?’ ‘루푸스를 이기셨다는데 어떻게 한 건가요?’ ‘우리나라의 루푸스 환자는 얼마나 되나요?’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 조언 좀 해주시죠.’

루푸스는 140여 가지나 되는 류머티즘 질환의 하나로 ‘자가 면역 질환’이다. 자가 면역 질환이란 자기 몸을 지켜야 하는 면역계(항체)가 자신의 몸의 기관(세포)을 항원으로 오인해 공격함으로써 생기는 병들을 말하는데, 류머티즘 질환들은 항체가 조직과 관절과 세포막을 공격해 염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주 원인으로 꼽힌다. 유전이라고도 하고, 여성 호르몬과 관련이 있다고도 하지만, 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왜냐하면 유전이란 같은 직계 혈통끼리 발병률이 적어도 90% 이상 돼야 하는데 루푸스는 10%도 안 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여성호르몬이 적어질수록) 병의 예후가 좋아지긴 하지만 최윤희씨 경우처럼 60세가 넘어서 발병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환자 수는 정확하지 않지만 미국의 경우 150만 명의 환자가 있다. 0.005%의 확률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25만 명의 환자가 있을 수 있는데 루이사에 등록된 수는 5200여 명밖에 안 된다.

루푸스는 15년간 나를 괴롭혔던 병이다. 약에서 완전히 벗어난 지 벌써 7년이나 됐지만, 한때는 오늘밤을 넘기기 어렵겠다는 선고를 3번이나 받았었다. 폐와 심장뿐 아니라 간, 신장, 늑막, 대장, 혈관, 혈액의 혈소판·적혈구 파괴까지 심각하게 침범당했었다. 그러나 오랜 투병 끝에 병은 나았다. 루푸스는 나를 괴롭혔지만 나를 성장시켰고, 내 눈을 나에게서 세상으로 뜨게 해 준 고마운 병이다. 어떻게 나았는가? 나 자신이나 내가 만난 많은 치유된 환자들에게서 느끼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병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병을 가진 자신을 깊이 사랑하며, 자신이 나을 것을 믿어야 한다. 병에 갇히지 말고, 병이 지나간 후 찾아 올 행복을 확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눔과 희망, 그것이 바로 루푸스를 이긴 비결이다.

정미홍 방송인·더코칭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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