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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금융, 라응찬 ‘회장 퇴진’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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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신한금융지주 라응찬 회장의 대표이사 회장직 사퇴로 이사회 중심의 과도체제가 들어섰다. 신한지주 이사회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새 회장 선임 과정을 관리키로 했다. 그렇다고 그가 완전히 물러난 건 아니다. 신한 빅3는 모두 등기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다. 갈등 구조는 그대로다. 게다가 금융감독원의 검사·제재와 검찰의 수사도 신한을 향해 있다.



고위 경영진의 내분 사태에 휘말린 신한금융지주가 사외이사 중심의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수습책을 찾기로 했다.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로 금융감독원의 제재를 앞두고 있는 라응찬 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직을 내놓은 데다, 2인자인 신상훈 신한지주 사장 역시 횡령과 배임 혐의로 직무가 정지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 전 회장과 신 사장, 이백순 신한은행장 등 ‘빅3’가 모두 등기이사직을 유지하고 있어 이사회 중심의 비상경영이 제대로 작동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다. 새 경영진 선임 과정에서 라 전 회장과 신 사장 측의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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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3 모두 이사직 유지=라 전 회장은 대표이사 회장직에선 물러났지만 지주 경영에 대한 입김은 여전하다고 볼 수 있다. 등기이사직은 내놓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신 사장이 직무정지를 당한 상태이지만 등기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류시열 비상근이사가 대표이사 직무대행에 선임된 것이나 후계구도를 논의할 특별위원회가 이사회 멤버로만 이뤄진 것도 라 회장 측이 얻은 성과로 분석된다. 애초 신 사장 측과 신한은행 노조는 외부인사와 노조가 참여하는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주장했다. 지난달 30일 열린 이사회가 4시간 반가량 이어진 것도 특위 구성을 두고 양측의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결국 표결 끝에 특위는 12명의 이사 중 빅3가 빠진 9명으로 구성키로 했다.

 내년 3월 주총 때까지 대외적으로 신한지주를 대표할 류 직무대행도 라 회장과 가까운 사이다. 이 때문에 재일동포 사외이사들은 류 대행의 특위 참가에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계에선 이사회가 중심을 잡고 후계구도를 정해야 내분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라 전 회장과 신 사장이 사외이사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이사회가 독자적인 판단을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또 특위마저 편 가르기를 할 경우 신한 사태는 자체 수습이 어려운 상황을 맞는다. 이때 정부 개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새 경영진 후보는=류 대행은 “수긍할 수 있는 사람을 새 회장으로 뽑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 부분은 특위 구성원과 숙의하면서 차근차근 풀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신한지주 회장 선출은 이사회에서 맡아왔다. 주총에서 이사로 선출되면 이사회에서 대표이사 회장으로 추대하는 형식이었다. KB금융처럼 회장후보추천위원회와 같은 별도의 선출기구가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 라응찬이란 절대적인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특위는 회장 선임 절차를 보다 투명하게 바꿀 계획이다. 전성빈 이사회 의장은 이사회 직후 “지배구조와 관련해 노조와 외부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 대행과 사외이사 8명으로 구성된 특위가 KB금융의 회장후보추천위원회 같은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 KB금융 회추위도 사외이사 9명으로만 구성돼 있다.

 최대 관심사는 누가 새 회장이 되느냐다. 신 사장과 이 행장이 내년 3월 주총 이전에 동반 퇴진할 경우 새 경영진의 조합 형태는 다양하게 구성될 수 있다. 외부 명망가나 전직 신한 출신이 회장에 선임되면, 지주 사장이나 은행장엔 현직 계열사 사장이나 부행장급 임원들이 기용될 공산이 크다.

 새 회장엔 내부 인물과 외부 인물이 모두 거론된다. 내부 출신으론 이인호·최영휘 전 신한지주 사장과 홍성균 전 신한카드 사장, 고영선 전 신한생명 사장(현 화재보험협회 이사장) 등이 후보군이다. 외부에선 류 대행과 신한지주 사외이사를 지냈던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의 이름도 나온다.

 관료 출신도 한두 명 이름이 거론되지만 관치금융 시비에 밀리고 있다. 현직 인사 중엔 이휴원 신한금융투자 사장과 이재우 신한카드 사장, 서진원 신한생명 사장, 위성호·최범수 신한지주 부사장 등이 지주 사장이나 은행장 후보로 거론된다.

김원배 기자


금감원 8일부터 ‘고강도 검사’

검찰 수사도 계속, 빅3 곧 소환
내년 주총 전 모두 퇴진 가능성

라응찬 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직을 내놓았지만 이것으로 신한 사태가 끝났다거나 수습된 건 결코 아니다. 라 전 회장과 신상훈 신한지주 사장, 이백순 신한은행장 등 ‘빅3’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제재·검사와 검찰 수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 제재와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이들은 내년 3월 주총 전에 모두 이사직에서 물러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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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 전 회장, 중징계 불가피=금감원은 4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라 전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에 대한 징계 수위를 정한다. 라 전 회장은 “관행적으로 이뤄진 일”이라는 취지의 소명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30일 이사들에게 “평소 열심히 일해 온 직원들에게 금융 당국이 선처와 배려를 베풀 수 있도록 잘 보살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실명제 위반으로 함께 징계 통보를 받은 직원들에 대한 선처를 부탁하는 말이지만, 라 전 회장 자신에 대한 배려를 요청하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익명을 원한 금감원 관계자는 “제재는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라 전 회장이 실명제 위반을 지시·공모하거나 적극 개입한 행위자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직무 일부 정지 상당 수준의 중징계를 결정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더구나 금감원은 라 전 회장의 실명제법 위반에 대한 조사를 미적거리다 여론의 비판을 받은 것을 감안하면, 라 전 회장에게 선처나 배려를 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다만 금감원의 중징계가 이뤄진다고 해도 이는 2001년 이전 신한은행장과 신한은행 부회장 재직 시절에 대한 것이라 라 전 회장이 등기이사직을 유지하는 데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만 징계 수위가 높고 구체적인 불법행위가 드러날 경우 이사 자리에서도 물러나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질 수 있다.

 금감원은 또 8일부터 신한은행에 대한 종합검사를 실시한다. 금감원은 라 전 회장과 신 사장이 비자금을 만들어 썼다는 의혹과 이 행장이 재일동포 주주에게 5억원을 받은 부분도 확인할 방침이다. 종합검사는 12월 중순께 종료되고, 검사에 따른 조치는 내년 2~3월이나 돼야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검사는 상당히 강도 높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돼 빅3가 내년 초 다시 제재 대상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빅3, 검찰 소환 임박=검찰은 신한은행 측이 신 사장과 함께 고소한 국일호 투모로그룹 회장을 횡령 혐의로 지난달 28일 구속했다. 검찰은 투모로그룹이 신한은행에서 438억원을 대출받는 과정에서 신 사장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와 이희건 신한은행 명예회장의 고문료 명목으로 조성된 15억6600만원을 횡령했다는 의혹을 규명할 계획이다.

 검찰은 이번 주 신 사장을 소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신 사장 조사 이후엔 이 행장과 라 전 회장도 소환하기로 했다. 이 명예회장의 고문료를 함께 사용했다는 의혹과 함께 정치권 로비 등 다양한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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