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6자회담 재개가 능사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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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당사국들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히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대응방법은 잘못됐으며 미숙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경험에 비춰볼 때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다시 나오는 대신 5개국은 또 다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5개국의 의견이 통일돼 있지 않다는 것을 북한에 보여줄 뿐이다.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는 최우선 과제가 아니다. 5개국 간의 전략적 합의가 있어야 북한과 성공적으로 협상할 수 있다.

당초 6자회담의 주된 목표는 이런 것이었다. 첫째, 참가국들이 북한에 대해 단일한 입장을 취해 북한을 움직이는 지렛대로 쓴다. 둘째, 미.북 양자 간 협상이 아니라 다자주의에 입각해 협상을 한다. 셋째, 북한이 합의 내용에 군말 없이 따르도록 하는 데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음을 확인한다.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달성된 것은 거의 없다. 5개국은 회담에서 공동 전선을 취하지 못했다. 북한은 이러한 혼란을 이용해 시간을 벌었고 힘든 선택을 피해갔다. 3차 회담까지 진행되는 동안 북한은 원자로 가동, 플루토늄 재처리, 우라늄 농축 기술 개발 등으로 바빴다. 대신 신뢰 구축은 빈약했다. 지난달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이 그것이다.

지난해 6월 3차 6자회담에서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 '핵 동결 대 보상'에 합의했다. 회유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록 한.중.일 3개국은 미국의 공식적 노력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러시아는 엉뚱하게도 북한의 '부분적 핵 동결'을 지지한다고 나섰다. 북한은 고집을 피워도 별 제재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회담 복귀를 거부했다. 당사국들은 미국에 대해 좀 더 유연하고 새로운 조건을 내걸어야 한다고 압력을 가했다. 당사국들끼리 입장 조율을 하는 동안 북한은 위기를 잘 피해갔다. 이것이야말로 바보들의 게임이다.

사전에 조율된 협상 전략이 없는 향후 6자회담은 별 쓸모가 없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선택을 들이대지 않으면 북한은 움직이지 않는다. 수혜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대신 검증 가능한 핵 폐기를 하도록 하든지, 협상을 거부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단결해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지 않으면 이는 불가능하다.

한국과 중국은 당근에만 신경 쓰고 있는 것 같다. 제대로 되기만 한다면 북한을 다독거리는 것이 나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문제다. 만족할 만한 결과가 언제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한국과 중국은 공개적으로 북핵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달 북의 핵 보유 발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양국은 목적의식을 가진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우왕좌왕하는 모습만 보였다.

미국의 접근 방식이 이와 비교해 더 낫다고 볼 수만은 없다. 부시 행정부 내에서도 대북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중국과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해 협박도 유인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당근과 채찍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왔지만 지금 당장은 납북자 문제에만 전적으로 매달려 있다. 미.일이 한.중과 공조, 유화책과 강경책을 적절히 조화시켜 연합전선을 구축하지 않으면 향후 6자회담은 헛수고에 그칠 것이다. 만약 협상 전략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고, 미국이 좀 더 유연하게 북한을 다루고, 한.중이 좀 더 단호하게 나선다면 6자회담 재개는 시기적절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회담을 해봐야 별 소득이 없을 것이다.

마이클 아머코스트 미국 전 국무부 차관
정리=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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