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 총리의 ‘문인적 모습’ 읽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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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문인 총리’로 불릴 정도로 동서양의 고전 문학에 밝은 원자바오(溫家寶·68·사진) 중국 총리의 애송시와 문장을 모은 책이 나왔다. 22일 신경보(新京報)는 원 총리가 그동안 인용했던 시구와 문장을 엮은 『온문이아(溫文爾雅)』란 책을 중국화보출판사에서 간행됐다고 보도했다. 책 이름은 청나라 작가 포송령이 괴이한 이야기를 모아 쓴 『요재지이(聊齋志異)』에서 따온 구절이다. 원래 문인의 온화한 행동거지를 묘사한 표현이다. 이를 제목으로 고른 데는 원 총리의 성(溫)과 문인적 태도를 동시에 담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 책은 중국 수도사범대 문학원 왕룽린(汪龍麟) 교수와 국무원(중앙 정부) 기관사무관리국 판공청 허창장(何長江) 부주임이 함께 펴냈다. 왕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원 총리의 문화적 바탕을 음미하고 중국 전통 문화에 녹아 있는 지혜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책에는 원 총리가 기자회견과 정상회담, 각종 연설에서 언급한 명시와 명구 100여 편이 실렸다. 이들 구절에 대한 문학적인 해설과 함께 그 발언이 나오게 된 정치적 배경을 함께 서술했다.

 원 총리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할 때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옛시와 명언을 절묘하게 인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예로 2003년 총리로 취임한 직후에 열린 첫 내외신 기자회견에선 청나라 말기 정치인이었던 임칙서(林則徐)의 시구를 인용했다. ‘국가를 위한다면 살고 죽는 것이 무슨 상관이며 어찌 화를 피하고 복을 쫓겠는가(苟利國家生死以/豈因禍福避趨之)’라는 구절로, 갓 총리로 취임한 자신의 각오를 표현했다.

 기자 회견에서 대만 문제와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신해혁명의 원로인 위여우런(于右任)이 쓴 ‘나를 높은 산 위에 묻어주오. 대륙을 볼 수 있도록. 대륙이 보이지 않네. 그저 통곡할 수밖에(葬我于高山之上兮/望我大陸/大陸不可見兮/只有痛哭)’라는 시 구절을 인용했다. 중국과 대만이 하나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원 총리는 “내가 평소 인용한 시의 95%가 교과서에 없다고 어떤 학자가 분석했다”며 “이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중국인들이 한시를 점차 낯설어 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한 말이다. 그의 자작시 ‘별이 총총한 하늘을 바라보며(仰望星空)’에 등장하는 ‘(눈은) 창공을 바라보되 발은 현실을 딛고 서라(仰望天空/脚踏實地)’라는 구절은 올해 중국 대학입시 작문 시험에 출제됐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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