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라면상자 누가 옮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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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원이 담긴 라면 박스를 어떻게 혼자 듭니까."(김용규 광주시장 변호인)

"분명히 박혁규 의원이 혼자 들고 나갔습니다."(증인)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최완주) 심리로 열린 김용규 경기도 광주시장과 한나라당 박혁규 의원의 뇌물수수 사건 재판에서는 2003년 4월 1억원을 전달하는 상황을 놓고 변호인과 증인 사이에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박 의원과 김 시장은 2002년 5월~2004년 7월 광주시 오포읍 일대 주택조합아파트의 건축 인허가를 받게 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LK건설 대표 권모씨 등으로부터 각각 8억원, 5억원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뇌물)로 기소된 상태다.

이날 재판에서는 두 사람이 2003년 4월 박 의원 자택에서 1억원이 담긴 라면상자를 받는 과정이 공방의 대상이 됐다. 김 시장 변호인이 먼저 권씨 지시로 돈을 전달한 건설업체 박모 사장을 상대로 신문했다.

"당시 1억원을 어떻게 줬느냐"는 질문에 증인 박씨는 "현금으로 라면 박스에 담아서 줬다"고 답했다. 박씨는 "김 시장과 박 의원이 같이 있었는데 박 의원이 라면박스를 혼자서 번쩍 들고 나가 차 트렁크에 실었다"고 설명했다. 이때 재판장이 "국회의원이 높아요, 시장이 높아요"라고 질문을 던지자 박씨는 "국회의원이 높다"고 말했다. 이에 재판장은 "그런데도 김 시장이 들어 준다는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변호인은 "현금 1억원이 얼마나 무거운 줄 아느냐. 내가 실험해보니 13㎏이다. 서너 살 먹은 아이의 무게다"면서 혼자 들기가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씨의 진술이 신빙성이 떨어짐을 부각한 것이다. 추가로 뇌물을 준 장소를 놓고 신경전이 벌어졌다. "당시 돈을 준 곳이 어디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박씨는 "광주에서 제일 큰 중국집"이라고 말했다.

"거액을 준 장소인데 어떻게 상호를 모를 수 있느냐"는 변호인의 추궁에 이어 재판장이 "거기 가면 안다는데 거기가 어디냐"고 묻자 박씨는 "먹자골목"이라고 답했고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라면상자에 전달한 1억원 뇌물 공방이 어느 쪽의 승리로 끝날지 주목된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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