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아름다워] 산울림 소극장 20년 임영웅씨의 뚝심 빛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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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국 현대 연극에서 소극장이 차지하는 부피와 무게는 실로 엄청나다. 소극장이 드물었다면 연극 발전은 가능했을까? 현재 서울 시내에는 40~50여 개의 소극장이 산재해 있다. 이 가운데 7~8할이 '연극의 메카'라는 대학로에 밀집돼 있다. 건물을 지으면 필수품처럼 소극장을 갖추는 게 이곳의 풍습이다.

소극장의 등장과 활성화는 1960년대 '소극장 연극 운동'의 태동과 궤를 같이 한다. 서구에서 소극장 운동은 주류에 도전하는 실험적인 연극을 위한 대안 모색에서 비롯됐지만, 한국은 그게 곧 주류를 이끄는 '한국적' 발전과정을 거쳤다. 지금은 소멸된 실험극장, 명동의 카페 떼아뜨르 등이 1970-80년대 소극장 연극 붐을 주도했다.

80년대 들어 연극 명소 하나가 서울 서교동에 문을 열었다. 신촌에서 홍익대 방향으로 가다보면 길 오른편에 만나는 100석 남짓한 아담한 공연장. 원로 연출가 임영웅씨와 부인 오증자(전 서울여대 교수)씨가 의기투합해 85년 3월 문을 연 소극장 산울림이다. 극단 산울림의 본거지다.

개관 공연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였다. 당시 생소한 부조리극를 표방했지만, 임씨의 탁월한 해석으로 '쉽고 재미있는' 이 땅의 '고도'가 탄생했다. 이 작품은 90년 원작의 고향이랄 수 있는 아일랜드 더블린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등 임씨의 대표작으로 자리를 굳혔다.

산울림 소극장이 이 달 개관 20주년을 맞았다. 그 동안 '고도'를 비롯한 짱짱한 작은 연극들이 이 무대에 오르내렸다. 성공작이 무수히 나왔지만, 기실 산울림은 손숙.박정자.윤석화 등 스타 여배우를 기용한 '여성연극'의 명가다. '고도'에 이어 손숙.박정자의 히트작이 기념 무대를 장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산울림 20년의 평가는 저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뚜렷한 색깔의 '산울림표' 연극에 대한 관객들의 변함없는 신뢰는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이런 브랜드 파워는 극장과 예술그룹이 분리된 채 무색무취로 겉도는 숱한 신생 소극장들이 본받아야할 대목이다. 사재를 털어 소극장의 급자탑을 세운 임영웅씨의 뚝심과 고희(古稀)의 노익장은 후배 연극인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정재왈 공연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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