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방송MC 꿈 키우는 60세 예비대학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이은택(왼쪽에서 셋째)씨가 고3 학생들과 나란히 무대에 섰다. [대경대학 제공]

“더 늦기 전에 전문 MC(사회자)가 돼 구수한 입담으로 이웃에 웃음을 주는 새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회갑을 앞둔 만학도가 50년 전 품은 방송MC의 꿈을 이루기 위해 뒤늦게 대학에 진학했다. 주인공은 최근 실시된 대경대학 2011학년도 방송MC과 수시모집에 최종 합격한 이은택(60·대구시 북구 산격동)씨. 이씨는 9일 치러진 실기시험에서 다른 고3 지원자들과 나란히 경쟁해 열정과 재능을 인정받아 합격자 13명에 포함됐다.

 그가 꿈을 이루기 위해 용기를 낸 것은 55세 때.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던 이씨는 30여 년간 세탁용 유류 판매업을 해오다 그해 레크리에이션 2급 자격증을 땄다. 2년 뒤 이씨는 학력 인증 중학교(한남중)를 거쳐 58세 때는 2년제 고등학교(경신정보과학고)에 들어갔다. 고교 담임은 이씨의 꿈을 듣고 늦은 나이지만 대학에서 방송MC 전공이 가능하다며 용기를 북돋웠다. 그 말에 희망을 얻었다. 이씨는 모임에 틈틈이 나가 서투르지만 마이크를 잡고 진행 솜씨를 키웠다. 음악 반주기도 구입해 트로트 노래로 모임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며 연습을 거듭했다.

 이씨는 이런 노력 끝에 이번 입시에서 10대의 젊은이들과 나란히 합격한 것이다. 이씨를 심사한 대학 측은 “트로트를 소화해 내는 수준이 발군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을 하면서도 트로트 메들리를 불렀다. 또 마이크를 잡으면 가수 나훈아·배호·박일남의 노래부터 최신 트로트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백 곡을 부른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재미있는 말로 좌중을 웃겼다.

 그는 합격 소식을 듣고 “꿈을 이루어 가는 것같아 가슴이 벅차다”며 “앞으로는 방송MC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던 일도 사위에게 맡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어린 학생들과 공부하는 것도 “그들이 불편하지만 않다면 오히려 즐겁고 행복하다”며 들뜬 기분이었다.

 그가 닮고 싶고 존경하는 MC는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는 송해. 그처럼 전국을 누비며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MC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이씨는 방송MC과에 합격한 뒤 꿈이 하나 더 생겼다. 앞으로 노인들에게 웃음 봉사를 하는 ‘실버 전문MC공연 봉사단’을 만드는 것이다. 그동안 틈틈이 트로트를 들려 주는 봉사를 해 왔지만 이제는 제대로 된 봉사팀을 만들어 이웃과 더불어 재능을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이다.

송의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