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추적] 리조트개발 5배 수익 미끼 … 전 법무장관 부인도 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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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경기도 시흥시의 한 다세대주택에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들이닥쳤다. 지난해 10월부터 잠적한 21세기컨설팅 양화석(64) 회장의 은신처였다. 그는 고수익 부동산 투자를 미끼로 투자자 7000여 명으로부터 3000여억원을 모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처벌법상 사기 등)로 검찰의 추적을 받아왔다.

 양씨는 그동안 수십 차례 대포폰을 바꿔가며 도피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꼬리가 잡혔다. 역시 수배 중인 양씨 아들이 지난 4월 대포폰으로 동네 중국집에 주문 전화를 건 게 수사망에 포착된 것이다. 이 한 통의 전화를 단서로 잠복수사 끝에 양씨를 붙잡을 수 있었다.

 1985년 부동산업에 뛰어든 양씨는 99년부터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강원·경북·제주 등 전국 10곳에서 리조트와 테마파크를 개발한다며 투자자를 모았다. ‘투자 후 3년 안에 개발을 완료해 원금의 3∼5배 수익을 보장한다’는 조건이었다. 또 ‘개발이 안 되면 10%의 이자를 붙여 돌려주겠다’며 투자자를 현혹시켰다. 양씨는 한 지방대학에서 부동산마케팅 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실을 들며 자신을 ‘국내 부동산 박사 1호’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개발 예정지 10곳 가운데 착공을 한 곳은 2곳에 불과했다. 이마저 착공식만 연 뒤 사실상 현장은 방치된 상태였다. 또 대부분이 상수원보호지역이거나 부지 매입이 덜 됐고 도로가 안 나는 등 개발이 어려운 지역이었다. 게다가 투자금의 37% 정도를 양씨와 관리직·영업사원 등이 수당으로 나눠 갖는 다단계 방식이었다.

 양씨에게 속아 투자한 피해자들은 다양했다. 서민에서부터 변호사·회계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도 다수 있었다. 2008년 2월 김경한 당시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 전 장관의 부인이 21세기컨설팅에 4억5800만원을 투자한 것이 공개된 적이 있었다. 김 전 장관은 당시 “그것은 펀드 형태이고 투기는 아니며 아내가 투자한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피해자들은 사기 등 혐의로 양씨를 20여 차례나 고소했다. 하지만 매번 사업부지가 있고 사업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무혐의 종결됐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검찰이 경찰·국세청 등과 함께 부동산 투기 합동수사본부를 차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합동수사본부는 양씨에 대한 개별 고소 사건을 모아 한 줄기로 엮어 실체를 파악했다. 검찰은 그해 12월 최모(55)씨 등 7명을 구속 기소했지만 양씨는 이미 도주한 상태였다.

 ◆인허가 관련 로비 가능성 조사=양씨 검거로 21세기컨설팅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됐다. 검찰 조사 결과 3000여억원 가운데 관계회사 대여금이나 사업비, 토지구입비 등으로 1000억원이 쓰였다. 또 1000억원 정도는 양씨와 직원의 수당으로 나갔다. 양씨는 151억원을 빼돌려 땅을 사거나 계열사 유상증자 등에 사용했다. 나머지 1000억원의 행방이 검찰 수사의 핵심이다.

 검찰은 양씨가 이 돈으로 인허가 관련 로비를 했을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피해자 A씨는 “양 회장이 나에게 ‘K 단체장에게 30억원 넘는 정치자금을 전달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는 15일 양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양씨의 범죄수익을 환수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이철재·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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