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힌 혈관 뚫어주는 ‘스텐트’ 가 진화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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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그물망 형태의 관상동맥용 스텐트(사진 위). 스텐트를 삽입하기 전 손에 들고 있는 모습.

심장에는 관상동맥이라는 굵은 혈관 셋이 있다. 그중 하나만 막히거나 확 좁아지면 숨이 가쁘거나 졸도하는 등의 응급상황이 발생한다. 재빨리 혈관을 뚫어주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40, 50대 연령의 돌연사는 관상동맥 등 심혈관 질환과 무관하지 않다.

관상동맥과 식도·요도 등 막힌 곳을 뚫어 주는 ‘해결사’ 스텐트(stent)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스텐트는 원형 금속망 형태로 혈관 등에 삽입해 부작용이 적잖았다. 그물망 사이로 혈관세포가 빠져나와 자라면 몇 달 뒤 다시 막히거나 혈전이 생기기 일쑤였다. 이물질이 인체에 들어옴에 따라 염증이 생기기도 했다. 식도 등 소화기 계통 스텐트의 경우 이식 후 안에서 움직여 제 기능을 못하는 일도 빈발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전남대·경희대·인하대·한국세라믹연구원·카이스트 등은 혈액 응고 등 부작용이 적은 스텐트 개발에 큰 진전을 봤다. 혈관용의 경우 2~3년 지나면 몸속에서 완전히 분해돼 부작용은 물론 흔적조차 남지 않는 차세대 스텐트 등이 그것이다.

KIST의 한동근 박사팀은 관상동맥용 금속 스텐트의 표면에 혈액이 응고하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약물을 코팅한 제품을 개발, 동물 실험을 하고 있다.

또 완전히 분해돼 없어지는 인체 친화형 차세대 스텐트의 기초 기술도 개발했다. 완전 생분해성 스텐트의 경우 막힌 혈관을 뚫은 뒤 그 상태로 2~3년 유지되면 스텐트가 녹아 없어져도 혈관이 뚫린 채로 유지되는 생체 현상을 활용했다. 다시 말해, 막힌 혈관을 뚫어 넓혀 놓은 채 오래 놔두면 그렇게 유지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스텐트로 인한 부작용이 함께 없어진다. 이런 제품은 해외에서도 상용화하지 못했다.

전남대 의과대 정명호 교수는 14가지 스텐트 기술 특허를 받았다. 약물 방출이 한 달 동안 지속되는 스텐트, 혈관이 갈라지는 곳에 이식하는 가지형 스텐트 등이다. 그는 전남 장성군의 지원을 받아 장성에 스텐트 연구소와 공장을 세워 상용화에 힘쓰고 있다. 장성군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국립심혈관센터를 유치하려고 스텐트 등 관련 연구·생산 단지를 특화하고 있다.

스텐트의 세계 시장은 연간 약 2조5000억원, 국내 시장은 1500억~2000억원으로 추정된다. 국산 고급 스텐트가 해외에 본격 선보일 날이 멀지 않았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스텐트 개발 주역 한동근 박사 “산·학·연 힘 모아야 선진국과 기술격차 극복”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바이오소재센터의 한동근(사진) 박사는 “세계적으로 수요가 급증하는 스텐트를 하루빨리 국산화해 수출 품목으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식경제부의 차세대 스텐트 개발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스텐트는 우리나라 수입 의료용품 중 1위 품목일 정도로 수입 의존도가 높다. 현재 한국의 40대 이상 연령의 사망원인 1위는 심혈관계 질환이다. 그는 “고령화가 진전될수록, 식단이 육류 위주로 서구화할수록 심혈관계 질환이 늘고, 스텐트 수요 또한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나라가 가장 부족한 것은 스텐트의 원천기술이다. 스텐트의 소재와 약물 내장 기술 등 면에서 크게 뒤떨어진다. 국내 시장의 대부분을 외국 업체가 장악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 박사는 “산·학·연이 연구력을 모으면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단기간에 좁힐 수 있다.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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