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가 ‘외규장각 도서 귀환’ 길 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공은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프랑스와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상을 진행해온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13일 현재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프랑스 측이 ‘상호 대여’라는 원칙에서 한발 물러나 ‘일방 대여’를 제시, 한국이 이를 받아들일지 결정해야 하는 국면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프랑스가 새 카드를 내민 것은 다음 달 한국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전에 양국 최대 현안인 이 문제를 매듭짓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 회의를 위해 다음 달 12일 1박2일 일정으로 방한한다. 프랑스 대통령으로서는 10년 만의 방문이다. 양 정상은 12일 별도의 양자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 따라서 프랑스는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한국은 올해 G20회의의 의장국이고, 프랑스는 차기 의장국이다. 따라서 사르코지 대통령은 한국 측 환대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정황을 간파한 한국 협상단은 올해를 외규장각 도서를 돌려받을 수 있는 절호의 시기로 여겨왔다. 한 관계자는 “이 모멘텀을 놓치면 수십 년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일해왔다”고 말했다.

일방적 대여는 형식적으로는 프랑스 측이 제시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국 측이 유도해 얻어낸 것이다. 올해 초 새 협상을 시작하며 한국 측은 ‘반환’을 요구했고, 프랑스 측은 기존 합의사항인 ‘상호 대여’를 주장했다. 한국 측은 이에 다른 문화재를 프랑스에 보내는 것은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이며, 타결을 위해서는 기존 합의보다 진전된 내용이 필요하다고 맞서왔다.

한편 양측은 협상 타결을 전제로 양국 수교 130주년인 2016년을 ‘한·프랑스 우호의 해’로 정해 양국에서 대대적인 문화행사를 벌이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기존 합의에 포함된 ‘상호교류’를 충족시킨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대여’라는 형식을 통해 문화재를 돌려받는 카드를 놓고 고심 중이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도서를 한국으로 가져온다는 실익은 챙기지만 유출 문화재를 대여라는 방식으로 반환받는 선례가 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