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정은에게 직격탄 ‘평양판 왕자의 난’ 터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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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후계 구도에서 장남 김정남(39)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이복동생 김정은(26)에게 밀린 그가 11일 방영된 일본 TV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3대 세습을 반대한다”고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자는 12일 “지난달 말 노동당 대표자회를 계기로 후계자 김정은 띄우기에 공을 들이고 있는 아버지 김정일은 물론 당사자인 김정은에게 직격탄을 날린 셈”이라고 말했다. 김정남은 “동생이 필요로 할 때 해외에서 도울 용의가 있다”는 언급도 내놓아 강온 양면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3대 세습 반대’를 공개 표명했다는 점에서 큰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평양 로열패밀리 사이에 분란을 예고한 것이란 풀이도 나온다.

당장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진노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정남은 2001년 5월 일본에 가짜 여권으로 밀입국하려다 국제적인 망신을 샀다. 이후 김 위원장의 눈 밖에 나 마카오 등지를 전전하면서 후계구도에서 탈락했다. 불안정한 건강상태 때문에 김정은 후계 기반 다지기를 서두르고 있는 김정일로서는 김정남의 막무가내식 행동을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일은 자신의 이복동생인 김평일 폴란드 대사처럼 김정남도 조용히 외국에서 살아주기를 바랄 것”이라며 “진상을 파악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경우에 따라 김정남을 제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후계자 지위를 굳혀가는 김정은이 직접 이복형에 대해 입막음을 시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정은은 이미 지난해 4월 평양을 무대로 김정남의 권력 기반을 허물어버리려는 시도를 했다고 한다. 자신이 장악하고 있는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을 동원해 김정남의 평양 체류 시 은거지인 우암각을 습격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사건은 한·미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 ‘평양판 왕자의 난’으로 불리며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구도 확정과정에서 빚어진 첫 충돌 사례로 기록됐다. 이승열 이화여대 북한학 교수는 “김정남의 ‘3대 세습 반대’ 발언은 김정은 체제에 대한 반감을, ‘돕겠다’는 발언은 권력에 대한 의지를 각각 드러낸 것이란 점에서 김정은 후계체제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강 악화 등에 따른 김정일 유고 시 후계 지위 보전이 어려울 것이란 메시지도 김정은에게 보내고 있다는 얘기다.

김정남은 이날 인터뷰에서 ‘공화국’이라 하던 이전 표현 대신 ‘북한’이라는 단어를 썼다. 북한이 거부 반응을 보이는 이런 표현을 쓴 것을 두고 의도적으로 아버지인 김정일 위원장과 김정은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차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또 앞으로 평양 귀환을 포기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김정남의 발언이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비운의 왕자’의 처지를 보여주는 것일 뿐 김정은 권력에 대한 도전이라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김일성대 교수로 재직했던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 소장은 “정말 세습에 반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종의 섭섭함의 표현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남은 누구=김정일 위원장이 여배우 출신 성혜림(2002년 사망)과 사이에서 낳은 장남. 외국 언론과 비교적 자주 접촉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후계 문제를 둘러싸고 재일동포 무용수인 고영희(2004년 사망) 소생인 두 아들 정철·정은과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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