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주체사상 대부의 영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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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13년 전의 어느 봄날, ‘주체사상의 대부’로 불리던 황장엽 선생님은 처음 만난 저를 부여잡고 뜨거운 눈물을 왈칵 쏟아냈습니다. 탈북자 1호 박사인 제게 ‘고맙다’를 연발하신 그 이유를 선생님이 떠나신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보잘것없지만 탈북자로서 그럭저럭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던 저의 모습은 선생님께 작은 위로였던 것 같습니다.

대쪽 같은 기상과 고결한 품성을 지닌 노동당 전 국제비서 앞에서 평당원이었던 저는 철부지 자식처럼 휴전선을 넘어온 탈북 과정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분은 마치 어리광을 받아주듯 “정말 대단한 용기다. 잘 해냈다”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지금껏 외국생활을 제외하고 거의 매주 한 차례씩 ‘인간중심철학’을 공부하러 그분의 수하로 찾아갔습니다.

제게는 아버님 같고 하늘 같았던 선생님. 님은 애석하게도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87세의 연세 때문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건강을 걱정할 때마다 저와 제자들은 “적어도 김정일보다는 오래 사셔야 한다”고 말씀드리곤 했습니다. 김정일 사후 북한 민주화의 서광이라도 보셨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홀연히 가시다니 정말 하늘도 무심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97년 2월, 선생님은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박승옥)와 유복하던 1남3녀,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들에게 닥칠 비극적 운명을 예감하면서도 한국행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밤마다 단장의 아픔을 겪으시면서도 그 지독한 고통을 북한민주화와 자유, 그리고 평화통일을 위한 의지로 승화시키셨습니다.

선생님은 북한 체제의 이념적 토대를 마련한 사상가였습니다. 문제는 주체사상이 아니라 이를 독재의 도구로 전락시킨 김일성·김정일 체제입니다. 물론 세계 어느 사상사를 보아도 사상과 그 사상의 실현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사례는 없습니다. 어떤 사상이든 ‘인간적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주체사상은 너무나 굴절되었고 아예 봉건적 유교사상으로 퇴보했습니다. 주체사상은 인민대중을 탄압하는 예리한 칼이 되었습니다.

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인민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김정일에 의해 최악의 인권탄압이 자행되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선생님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북한 체제에서 누리던 부귀영화도 벗어 던지고 망명의 발길을 서울로 옮기셨습니다. 북한 노동당 65년 역사에서 선생님처럼 온몸을 던져 독재에 저항한 북한의 엘리트를 우리는 아직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은 비록 가셨지만 인간사랑의 철학과 북한 민주화의 뜻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2만 명 한국 정착 탈북자는 약속드립니다. 앞으로 선생님의 원대한 뜻을 계승하기 위해 힘차게 싸워나갈 것입니다. 분단의 땅을 초월하여 북과 남에서 자유를 갈망하며 한 몸 던져 독재에 저항한 선생님의 투철한 애국애족 정신은 후손만대에 길이 빛날 것입니다. 남북 통일과 북한 민주화가 이뤄지는 영광의 그날, 선생님의 넋과 유해를 평양으로 모셔가 가족들 곁에 고이 묻어드릴 것입니다.

부디 영면하십시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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