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리포트] 외지인 들락날락, 성범죄 공포 … 초등교 옆 고시텔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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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 길은 무서워요. 고시텔이 생긴대요.”

최근 서울 영등포구 A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김가영(12)양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친구 연희원(12)양이 거들었다.

“학교 뒷문으로 안 다녀요. 요즘 반 애들이 모이면 그 얘기 해요.”

서울 영등포구 A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들은 고시텔이 생겨 찜찜하다고 말했다. 이 학교 뒤에는 9층 높이의 건물 4개 동이 솟아 있다. 학교와는 6~7m 너비의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이 건물은 지난해 11월 구청으로부터 근린생활시설로 건축허가를 받았다. 올해 7월 건물주가 독서실에서 고시원으로 용도변경을 구청에 신청하며 학부모들과의 갈등이 불거졌다. 학부모들은 구청에 민원을 내고 건물 앞에서 집회를 여는 등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건물주와 학부모 대표 간에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이들은 강제추행과 폭행으로 서로를 각각 고소했다. 이 사건은 현재 남부지검에서 수사 중이다.

인근 B초등학교도 이 문제로 몸살을 겪고 있다. 지난 7월 구청에 접수된 학교 옆 공터의 19층 높이 건축물 공사 때문이다. 구청 홈페이지에는 ‘학생들이 위험하니 고시텔 입주를 막아 달라’는 학부모들의 민원이 수백 건 올라왔다. 건물주는 학원과 독서실 등을 짓겠다며 ‘교육연구시설’로 용도신청을 했다. 그러나 독서실이 기숙학원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말이 학부모들 사이에 퍼진 것이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초등학교 뒤에 들어선 9층 고시텔 건물. 차 한 대가 지나갈 만한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학교와 맞닿아 있다. ‘개방형 학교’인 이곳은 담장이 없다. [심서현 기자]

건물주는 5일 “이후 고시원으로 용도변경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구청에 제출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다.

실제로 A초교 옆 고시텔 건축주는 지난해 12월 동일한 내용의 각서를 구청에 제출했으나 현재 이를 번복한 상태다. “각서는 법적 효력이 없으니 (고시원으로) 용도변경을 허락해 달라”며 서울시에 행정심판을 청구한 것이다.

초등학교 옆 고시원을 놓고 학부모와 건축업자들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아동 성범죄가 증가하면서 주로 외지인이 거주하는 고시원에 대한 학부모들의 거부감이 커지는 것이다. ‘사유재산권 침해’라는 건물주 측 입장과 ‘어린이 안전 우선’이라는 학부모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 중간에서 구청 등 관계기관은 고심하고 있다. 고시원이 ‘유해시설’인지에 대한 뚜렷한 법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고시원은 ‘실제 존재하되 법적으론 존재하지 않는’ 건축물이었다. 법에 용도가 규정되지 않아 사실상 불법영업 상태였다. 지난해 7월 건축법이 개정돼 고시원은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왔다. 바닥면적 1000㎡ 이하의 고시원은 ‘2종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됐다. 이후 고시원과 오피스텔을 합한 ‘고시텔’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고시텔 창업이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임대료를 받는 수익형 부동산 중에서 비교적 적은 자본금으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시텔은 대개 보증금이 없다. 한 주나 하루 단위 투숙도 가능하다. 건축법 개정 후 서울시에서만 2만7058실의 고시원이 인허가됐다. 논쟁은 여기서 시작된다. 학교보건법에 따라 숙박시설은 학교 부근 200m 안에 들어설 수 없다. 법에는 호텔·여인숙·여관이 명시돼 있다. 하지만 취사를 공동으로 하는 고시원은 ‘숙박시설’에 포함되지 않는다. 법적으로는 유해시설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현실적으로 ‘유해’하다고 주장한다. 또 경찰은 고시원을 학교 주변 ‘유해업소’에 포함시켜 안전점검 대상으로 삼고 있다. 고시텔이 유해업소인지 여부를 놓고 정부 기관 사이에서도 판단을 달리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 동대문구 C초등학교 앞 3층짜리 고시원은 터만 파놓고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지난 6월 학교 정문에서 50여m 떨어진 곳에 공사를 시작했으나 학부모들이 고시원 용도임을 알고 거세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축허가가 취소된 것은 아니다. 학부모들은 “구청에서 땅을 사들여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구청 담당자는 “내년 예산 편성까지 기다려야 하는 데다 구청 예산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며 “이를 의논할 상위 기관도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글, 사진=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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