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 아이를 둔 부모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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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호(37·경기도 안양시 안양1동)씨에게는 얼마 전 경사이면서도 걱정스러운 일이 생겼다. 아들 박정용(경기 안일초 2)군이 경인교대 부설 영재교육원에 합격한 것이다. 남들은 “축하한다”며 인사를 건네지만, 이씨는 앞으로 영재 아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지 고민이 크다.

 미국 국립영재교육연구소장 조셉 렌줄리 박사는 지능지수(IQ) 외에 창의성과 과제 집착력을 영재의 주요 조건으로 꼽는다. 일반적으로 영재들은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나 학습을 할 때는 주변에서 불러도 모를 정도의 집중력을 보여준다. 호기심과 질문도 많다.

 하지만 머리가 좋고 기발한 생각을 많이 한다고 해서 모두 영재는 아니다. 시매쓰 강종태 부소장은 “문제 해결과정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는 창의성을 발휘하고 특정한 결과물을 산출해내는 과제집착력이 있어야 진정한 영재”라고 설명했다.

 영재성은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지만, 부모의 노력에 따라 영재성을 더욱 키우기도 하고 잃게 만들기도 한다. 영재성을 보이는 아이에게 선행학습을 과하게 시키면 학습거부반응이나 ‘틱’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반대로 재능이 있는 아이에게 평범하길 강요하면 자신의 능력을 쓸데없는 일에 소진하면서 실패한 영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김선해(42·서울시 노원구 상계동)씨의 아들 정동한(서울 을지초 3)군은 수학·과학은 물론 음악·미술·글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재성이 나타났다. 김씨는 정군의 영재성이 어느 쪽으로 가장 발달됐는지 알아내기 위해 꾸준히 관찰했다. 어떤 활동에서 과제를 스스로 수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가장 강한지도 테스트했다. 김씨는 “학습능력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분야를 택해 지원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며 “얼마 전부터 수학·과학 영재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재 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 중 하나가 학원을 보내야 할 지 여부다. 사실 영재 자녀를 부모가 직접 가르치기에는 부담이 크다. 괜히 잘못하다 오히려 아이의 능력을 퇴보시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그래서 무작정 학원부터 보내는 부모가 많다. 하늘교육 노원센터 박현주 부원장은 “반드시 학원을 보내거나 전문가의 손에 맡겨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며 “부모님이 집에서 아이의 그릇의 크기와 깊이를 키워준다고 하면, 학원은 그릇을 내용물로 채워주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영재의 약점은 취향이 편향돼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학영재는 과학관련 도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도, 시나 문학 장르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정군이 대표적인 경우다. 김씨는 “주요 독서 목록을 틈틈이 체크해 다양한 지식을 골고루 습득할 수 있게 도와주고, 독후활동을 함께 하면서 언어능력을 키우는데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영재들은 종종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관심사가 다르고 행동이 독특해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박 부원장은 “인성교육은 영재부모가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며 “대화를 통해 학교생활이나 친구 관계에서 문제가 없는지 파악하고 사회성을 키워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재성의 발현에는 가정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 1999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이 내놓은 통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같은 영재라도 아버지가 아이의 일상생활에 큰 관심을 갖고 격려하는 경우 성적이 더 좋았다. CMS영재교육연구소 이은주 소장은 “아버지는 딸보다 아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며 “또래 아이들의 공통 관심사를 접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 아빠의 몫”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선생님의 역할을 한다면 아빠는 친구의 역할을 하는 것이 좋다. 특히 아빠와 다양한 모둠 활동을 함께 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가르치는데 효과적이다. 협동이 필요한 축구 같은 스포츠나 가족끼리 봉사활동을 해보는 것은 책만 읽던 아이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다. 부자끼리 캠프에 참가하는 등 새로운 경험도 영재를 더욱 뛰어난 인재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사진설명] 김선해씨는 정동한군의 영재성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히고 있다.

<송보명 기자 사진="김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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