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아시아의 스위스 서울이 금융허브 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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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호 27면

로리 나이트

“외국 기업들이 한국에서 주식예탁증서(KDR)를 발행하고 싶어할 때가 온다.”
영국 투자자문 옥스퍼드메트리카 회장인 로리 나이트의 말이다. 그는 “서울이 아시아 금융허브가 될 수 있다”며 그렇게 말했다. 기대하지 않은 말이었다. 한국 기업에 금융자문을 해주기 위해 최근 서울을 방문한 그에게 묻고 싶었던 이야기는 ‘어떻게 하면 국내 중소기업들이 미국과 유럽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까’였다. 그는 “한국 중소기업들도 DR을 발행해 국제 금융시장에 데뷔할 수 있다”고 설명하다 말고는 갑자기 “한국 금융시장도 외국 기업들이 예탁증서를 발행하고 싶어할 만큼 매력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귀가 솔깃했다.

전 스위스 대통령 금융자문관 로리 나이트

-서울이 어떤 매력을 갖고 있는가.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해 내린 결론이다. 한국에는 아주 탄탄한 기업이 많다. 사람들의 능력도 뛰어나다. 서울이 국제금융 허브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만큼 강점을 갖고 있다.”

-한국 정부가 서울을 금융허브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기는 하다.
“미래에 아주 획기적인 결실을 거둘 것으로 본다. 이를 위해서는 누군가 주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나설 필요가 있다. 금융회사나 금융 전문가들이 일 처리를 부드럽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은 아시아의 스위스가 될 수 있다.”

-한국이 스위스처럼 될 수 있다는 말인가.
“한국은 아시아의 스위스다. 의심할 필요가 없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한국이 스위스를 닮았다는 얘기다.”

나이트는 영국 출신이지만 스위스 중앙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그는 옥스퍼드대에서 금융을 가르치기 전에 스위스 중앙은행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했다. 이사까지 승진했다. 스위스 대통령실 금융자문관이기도 했다. 이런 그가 스위스를 들먹이며 서울의 금융허브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한국과 스위스의 어떤 점이 닮았나.
“두 나라 모두 질 좋은 노동력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핵심 산업을 잘 관리했다. 이들 산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어떻게 하면 서울을 금융허브로 키울 수 있을까.
“해외 유명 기업들을 서울 증권시장에 유치해야 한다. 서울에서 주식예탁증서(KDR)를 발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유명 기업이 서울에서 발행한 예탁증서가 한국 금융시장의 매력을 말해주는 방증이 될 수 있다.”

-서울증시에 상장하고 싶은 해외 기업이 있을까.
“한국 시장을 중시하는 기업이 많다. 그들은 내심 서울증시와 인연을 맺고 싶어 한다. 또 중국 등 주변국 기업들이 선진 금융시장에 상장하기 전에 서울에서 예탁증서를 발행해 경험을 쌓도록 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화제를 바꿔, 해외 연기금이 한국 중소기업들에 관심이 있을까.
“이번 금융위기가 한국 중소기업들에 좋은 기회를 만들어줬다. 미국·유럽의 연기금 운용자들이 기존 투자 원칙이나 기준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지켜온 (선진시장 위주의) 투자 원칙이나 기준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들이 한국 등 아시아 중소기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국 중소기업들은 미국이나 유럽 증시 상장을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곧바로 뉴욕증권거래소(NYSE)나 런던증권거래소(LSE)에 갈 필요가 없다. 미국의 장외시장인 OTCQX 같은 곳에 예탁증서를 상장하면서 경험을 쌓으면 좋다. 한국의 성원파이프가 최근 OTCQX에 상장했다.”

-OTCQX는 어떤 거래소인가.
“미국 장외 주식시장이다. 장외 종목 가운데 프리미엄급이 거래되고 있는 곳이다. 유럽계 스포츠 용품회사인 아디다스와 금융회사 알리안츠 등이 상장돼 있다.”

-아디다스 같은 기업이 왜 장외시장에 상장했나.
“해외 기업들이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규정을 맞추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이를 피하면서 미국 자본시장에 데뷔하기 위해 OTCQX의 문을 두드리는 해외 기업이 많다.”

-한국 중소기업엔 상장 절차가 까다롭지 않을까.
“한국 회계가 최근 10여 년 새에 아주 투명해졌다. 한국 법규도 선진화됐다. 한국 중소기업들이 조금만 더 회계장부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면 OTCQX의 상장 기준은 어렵지 않게 만족시킬 수 있다.”

나이트는 유럽 시중은행들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의 재정위기가 악화되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은행들에 경영과 투자 전략을 조언해주고 있다. 그를 통해서 유럽 은행들이 재정위기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고 싶었다.

-유럽 재정위기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스페인은 생각보다 탄탄해 보인다. 아일랜드나 포르투갈은 경제 규모가 크지 않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듯하다. 그리스가 문제인데 벼랑 끝에 몰렸다가 물러서고 있는 단계다. 그리스가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할 확률은 50대 50이다.”

-아직도 불확실한 상태라는 말인가.
“재정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는다. 상당히 긴 시간을 두고 점차 진행되는 문제다. 정작 큰 문제는 유로(euro) 시스템이다.”

-유로 체제가 화근이라는 이야기인가.
“유로존 국가들은 경제·경제·사회적으로 너무나 편차가 심하다. 유로 사용국이 더 늘어나면 그 편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편차에도 유로화가 지탱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몇몇 나라는 유로존에서 내보내는 게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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