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질풍노도 vs 황금저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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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1국
[제1보 (1~14)]
黑. 이세돌 9단 白.왕시 5단

드디어 결승전이다. 중국의 신예 왕시(王檄)5단이 지난해 7월 예선전에 참가했을 때만 해도 그가 결승 파티의 주인공이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아직은 풋내기로 보였던 왕시는 삼성화재배를 통해 중국 바둑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고 이제 바둑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기로에 섰다.

2004년 12월 7일, 무관의 강자 이세돌9단은 검은 색 점퍼 차림으로 대국장에 나타났다. 을지로 삼성화재 본관에 마련된 대국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카메라가 일제히 플래시를 터뜨렸다. 실력은 있으나 지난 1년여 동안 무관이었던 이세돌이란 굶주린 맹수에게 삼성화재배는 결코 놓칠 수 없는 '먹이'였다. 그는 묵묵히 앞에 앉아 있는 왕시를 응시한다. 귀공자 타입의 왕시는 평온해 보인다.

왕시는 '황금 저울'을 가진 균형의 명수다. 언제나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며 승부를 길게 끌고 간다. 이세돌은 '거친 바람'이다. 그는 상대의 평정심을 뒤흔들고 페이스를 뒤흔들어 바둑을 격전으로 이끈다.

저울이 이길까. 바람이 이길까. 왕시는 21세, 이세돌은 22세. 돌을 가리니 이세돌이 흑이다. 대국 개시 선언과 함께 우상 소목에 흑돌이 떨어졌다.

우하의 정석에서 13의 한 수가 눈길을 끈다. 이 정석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9년 조훈현9단과 네웨이핑9단의 1기 응씨배 결승전이었을 것이다. 당시 네웨이핑은 13이 아니라 '참고도'흑1로 눌러갔다. 그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13으로 바뀌었다. '참고도'는 두텁다. 그러나 백을 편하게 해준 죄가 있다. 이에 비하면 실전의 13은 함축적이면서 은은한 노림을 품고 있다.

왕시는 A로 끊는 정석과정을 생략한 채 14로 덮어갔다. 이세돌의 다음 수는 무엇일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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