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밴드 “제3의 길은 끝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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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제3의 길’ 노선에 조종(弔鐘)이 울리는가. 영국 노동당의 에드 밀리밴드(40·사진) 신임 당수가 취임 일성으로 “신(新)노동당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중반 이후 중도주의를 표방한 노동당의 ‘제3의 길’ 노선이 폐기 수순을 밟을지 주목되고 있다. 밀리밴드는 25일 실시된 노동당 당수 경선에서 자신의 형 데이비드 밀리밴드 전 외무장관을 간발의 차로 누르고 전후 최연소 노동당 당수로 선출됐다. 노동당은 5월 총선에서 보수당에 패해 13년 만에 정권을 내주고 야당이 됐다.

밀리밴드 신임 당수는 선거 과정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조세정의 강화 등 약자에 대한 배려를 주창하고 전통적 표밭인 노동조합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이를 바탕으로 당초 불리할 것이란 예상을 뒤엎고 1.3%포인트의 표 차로 당선됐다. 그는 27일 노동당 전당대회 이틀째 연설을 통해 “신노동당(New Labor) 노선은 당시엔 옳았다. 그러나 이제 신노동당의 시대는 끝났다”며 노동당 정강정책을 대대적으로 수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레어 전 총리와 고든 브라운 전 총리가 추진해 온 중도 노선을 폐기할 것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28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서 노동당 지지율은 40%를 기록, 39%의 보수당을 3년 만에 앞섰다.

밀리밴드는 블레어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는 등 지나친 친미 정책을 추구해 왔고 소득 불평등을 부추기는 친기업적 정책으로 노동당의 근간인 서민·노동자를 소외시켰다고 강력하게 비판해 왔다. 또 ‘제3의 길’ 노선이 지나치게 신자유주의 쪽으로 기우는 바람에 보수당과의 차별성이 없어졌다는 입장에 동조했다. 그는 소득 불평등 해소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경제난과 재정긴축으로 더 어려워진 노동계층과 중산층을 끌어안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보수당에 밀려 만년 야당 신세를 면치 못하던 노동당은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한 전통 노선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절충한 이른바 ‘제3의 길’을 내세우며 1997년 집권에 성공했다. 중도주의 노선은 영국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에도 전파됐다. 노동당은 3기 연속 집권을 이뤘지만 5월 총선에서 금융위기 이후 국민의 변화 심리에 밀려 집권 연장에 실패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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