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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100년 만의 기상이변’만 되뇌면 끝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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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가위를 앞두고 서울과 인천에 ‘물 폭탄’이 쏟아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최고 289mm의 강우량을 기록하면서 주택과 도로가 잠기고, 전철이 멈췄으며, 전기가 끊겼다. 빗물이 빠지지 못하고 오히려 하수관이 역류하면서 빚어진 전형적인 ‘도시 홍수’다. 수도 서울의 한복판인 광화문 일대가 침수된 가운데 수만 명의 이재민들은 안방까지 차오른 흙탕물을 빼내고 가재도구를 챙기느라 차례 상을 차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더도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는 추석 명절에 뜻하지 않은 재난을 당한 이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위로를 보낸다.

기상청은 이번 비가 ‘100년 만의 폭우’라고 했다. 시간당 강우로는 관측 이래 최고라는 것이다. 그만큼 정확한 예측에 한계가 있다는 함축이 깔려 있다. 그렇더라도 40~60mm를 예보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예상 강우량의 다섯 배가 넘는 폭우가 내린 것은 뭔가 예보시스템에 큰 고장이 난 것이다.

지구온난화 탓이라지만, 전 지구적인 이상기후(異常氣候)는 이미 예고된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1월 서울에 100년 만의 폭설이 쏟아졌고, 4월엔 100년 만의 봄 한파가 기습했다. 한여름에도 관측 이래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되더니, 이번 가을 폭우도 100년 만이다. 가위 ‘100년 만의 기상 현상’의 일상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보시스템도 이런 상황까지 감안해 보다 정교하게 구축돼야 하는 것 아닌가.

방재(防災)시스템도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나라의 시설물 설계 기준은 대부분 10~100년 주기에 맞춰져 있다. 최대 100년에 한 번 일어날 빈도의 재해인데, 비용과 편익을 고려한 설정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100년 만의 현상이 빈발하는 상황에서는 방재기준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기상 현상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만큼 현재 4대 강 사업이 채택한 ‘200년 주기’의 기준을 주요 시설물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예보 따로, 대응 따로가 아니라 자연재해의 발생에서 복구까지 IT(정보기술) 기반의 일원화된 재난대응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천재(天災)는 어쩔 수 없더라도, 예방과 대처는 인간의 몫이 아니겠나.